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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억원 힐튼 호텔 불탔다… 네팔 시위대는 왜 이곳 표적 삼았나

조선일보 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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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억원 힐튼 호텔 불탔다… 네팔 시위대는 왜 이곳 표적 삼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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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지분 참여 불만, 고위관료 자제 부 과시 상징적 장소로 알려지며 시위대 공격 대상
시위대, 완공된지 1년된 네팔 최고의 상징 랜드마크 불질러 엄청난 손실
네팔 시위대가 800억 원 들여 만든 힐튼 호텔에 불을 지른 이유는?

8일 발생한 네팔 시위 사태 후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된 사진·영상 중 힐튼 카트만두 호텔이 네팔 Z세대 시위대 공격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은 장면이 온라인상 최대 관심사였다.

9일 샤르마 올리 총리 사임 후에도 시위대는 광범위한 방화와 공공건물 파괴를 자행했는데 정부·관공서 건물이 아닌 힐튼 카트만두 호텔이 표적이 된 이유는 왜일까?

카트만두 힐튼 호텔의 정상적인 모습(왼쪽)과 화염에 휩싸인 모습. /인스타그램

카트만두 힐튼 호텔의 정상적인 모습(왼쪽)과 화염에 휩싸인 모습. /인스타그램


힐튼 호텔은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전 총리의 아들과 그의 아내이자 네팔 외무장관인 아르주 라나 데우바 박사가 이 호텔의 지분을 과반수 인수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평소 네팔 정치 엘리트들의 호화로운 부 과시에 분노한 시위대는 네팔에서 가장 높은 호텔이자 상징인 힐튼 카트만두 습격에 나선 이유가 됐다. 데우바 부부는 9일 카트만두 자택에서 Z세대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Z세대 시위로 불리는 이번 사태는 네팔 정부가 지난 5일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포함해 여러 SNS 접속을 차단한 데서 촉발됐다. 정부는 이들 플랫폼이 혐오 발언, 가짜 뉴스, 사기 등에 악용되고 있다며 조처를 내렸다.

SNS를 즐기는 Z세대는 ‘SNS를 멈추지 말고 부패를 멈춰라’ ‘소셜미디어 차단을 철회하라’ 등 구호가 적힌 깃발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 과정에 네포 키즈, 네포 베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이 SNS에 넘쳐났다.


소위 고위 관료들의 자제들에 대한 것이었다. 네포 키즈(nepo kids)로 불리는 상류층 자녀가 소셜미디어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과시하는 데 대한 반감이 또래 세대에게서 폭발한 것이다.

네포는 권력자가 친족에게 지위·관직 등을 물려주는 것을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에서 나왔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고위층 자녀가 외국의 최고급 호텔에서 명품을 과시하는 사진과 함께 “이 돈은 다 어디서 나왔나?” “우리는 세금 내고, 너희는 플렉스(과시) 하지” 같은 메시지 등이 주를 이뤘다. 이 와중에서 카트만두 힐튼이 네포 키즈들의 플렉스 하는 공간으로 알려지면서 시위대의 표적이 됐다.

카트만두 힐튼은 샨커 그룹(Shanker Group)이 네팔의 호텔 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가지고 2016년 착공해 약 80억 루피(약 787억 원)의 투자 끝에 2024년 7월 문을 열었다. /카트만두 힐튼

카트만두 힐튼은 샨커 그룹(Shanker Group)이 네팔의 호텔 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가지고 2016년 착공해 약 80억 루피(약 787억 원)의 투자 끝에 2024년 7월 문을 열었다. /카트만두 힐튼


카트만두 힐튼은 샨커 그룹(Shanker Group)이 네팔의 호텔 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가지고 2016년 착공했다. 완공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네팔 전역의 공사가 지연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7년 간 각고의 노력에다 약 80억 루피(약 787억 원)의 투자 끝에 2024년 7월 마침내 172개 객실을 갖춘 5성급 호텔로 문을 열었다.


낙살 지역에 더르바르 광장, 파슈파티나트 사원, 스와얌부나트 사원에다 랑탕 산맥 조망권까지 네팔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사면의 조망이 가능한 64m 높이의 최고급 호텔이 탄생한 것이다.

카트만두 힐튼은 단순한 고급 호텔을 넘어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 설계했다. 반짝이는 외관은 불교 기도 깃발을 형상화한 수직 유리 기둥에다 패널은 햇빛에 따라 색조가 변하도록 했고, 해가 지면 원초적인 색채로 생동감을 더했다.

카트만두 힐튼 호텔의 인피니티풀. 카트만두 시내는 물론 히말라야까지 조망이 가능한 럭셔리 그 자체다. /카트만두 힐튼

카트만두 힐튼 호텔의 인피니티풀. 카트만두 시내는 물론 히말라야까지 조망이 가능한 럭셔리 그 자체다. /카트만두 힐튼


건물의 건축 양식 또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뤘다. 한쪽 면은 카트만두 도심 거리의 강렬한 분위기에 맞춰 기울어져 있고, 서로 교차하는 발코니와 흐르는 듯한 파사드는 외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타워가 스카이라인에서 역동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했다.


힐튼 호텔 내부도 최고급 수준이었다. 루프탑 바 오리온(Orion)은 나무 조각과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으로 네팔의 유산을 기념했으며, 채광창을 통해 히말라야의 밤하늘을 감상하도록 했다.

인피니티 풀과 올데이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데다 카트만두의 도시 경관과 그 너머로 펼쳐진 눈 덮인 히말라야를 180도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네팔의 지진 역사를 고려하여 힐튼은 복원력을 핵심으로 설계했으며, 타워에는 지진을 견딜 수 있는 전단 벽과 댐핑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네팔의 찬란한 상징은 1년 만에 폐허가 돼버렸다.

유리로 된 색채의 프리즘이었던 호텔은 화마로 가득한 채 흉물로 변했다. 네팔에서 가장 높은 호텔의 파괴는 단순한 물리적 손실 그 이상으로 보인다. 희망과 환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남은 것이다.

네팔 보건인구부는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전국에서 발생한 시위로 최소 30명이 사망하고 1000명 넘게 다쳤다고 밝혔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은 일시적으로 폐쇄됐고, 관광 의존도가 높은 네팔 경제는 이번 사태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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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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