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한국인 석방] 조지아 구금 한국인들 귀국길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에서 석방된 한국인들을 태운 버스 8대가 11일 오전 조지아주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공항에 차례로 도착해 대한항공 전세기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오전 2시쯤 출발한 버스는 ICE가 지정한 동선대로 이동해 약 7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지난 4일 ICE의 기습 단속으로 억류된 지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구금됐던 한국인 317명 중 1명은 현지 잔류를 택했다/연합뉴스 |
11일 새벽 1시 30분(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톤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 앞. 구금돼 있던 LG에너지솔루션 및 협력사 직원 330명이 줄을 지어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대형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지난 4일 현대차·LG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ICE 단속 요원들에게 갑자기 체포된 지 일주일 만이다. 취재진이 접근 가능한 지역과 버스 사이 거리가 멀어 표정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일부 직원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현장에서 이들의 모습을 본 취재진과 정부 관계자들은 손을 흔들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근로자들은 평상복이었지만 일부는 작업복을 입고 있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체포 당시 채워졌던 수갑이나 포승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이들은 지난 4일 체포 당시 소지하던 개인 물품은 돌려받았지만, 출장을 위해 싸 왔던 짐은 챙겨 오지 못했다. 직원들 짐은 LG에너지솔루션 소속 현지 직원들이 현지에서 모두 모아 화물 항공기를 통해 실어 나르기로 했다. 주인 없이 따로 옮겨져야 할 위탁 수하물 운송을 위해 정부는 미 당국과 통관 협의를 하고 있다.
이젠 집으로 - 11일 새벽 미국 조지아주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에서 나와 동료들과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한국 근로자가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이들은 합작 공장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마련한 대형 버스 총 8대에 나눠 타고 새벽 2시 16분쯤 애틀랜타 공항으로 출발했다. 원래 차로 4시간 30분(428㎞)이면 가는 거리지만, ICE가 지정한 도로를 통해 이송해야 한다는 미 당국 방침에 따라 6시간이 걸렸다. 버스 안에는 초코바와 생수 등 간식과 화장실이 마련돼 있어 중간에 들르는 곳 없이 공항으로 직행했다고 현장 관계자는 전했다. 버스 8대는 공항 전세기 전용 주기장으로 곧바로 진입했으며, 근로자들은 이날 낮 12시(한국 시각 12일 새벽 1시)쯤 버스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대한항공 전세기 KE2901편에 차례로 올라탔다. 미국에 일하러 왔다가 난데없이 감옥 생활을 겪어야 했던 직장인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순간이다.
이들이 탄 항공기는 B747-8i로 대통령 전용기로 쓰는 기종과 같다. 368석의 좌석을 갖춘, 장거리 국제선에 최적화된 비행기다. 퍼스트석(2석)과 비즈니스석(48석)에는 임산부를 포함해 기저 질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을 우선 배정했다고 LG엔솔 측은 밝혔다. 일부 퍼스트석은 집중 치료석으로 지정해,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직원을 앉혔다. 구금됐던 직원 중 여성들은 별도의 시설에 수용됐는데, 이 중 협력사 직원 1명은 현지에서 임신 사실을 알고 귀국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체포됐다. 미국 ICE도 이 사실을 알고 별도의 건강 관리를 지원했다고 한다. 현지 대응을 위해 출장 갔던 김동명 LG엔솔 사장은 이코노미석에 탑승했다. 15시간의 비행을 거쳐 12일 오후 2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근로자들은 현장에 마중 나온 가족들과 조우한 뒤 LG엔솔이 마련한 차량을 통해 집까지 이동하게 된다. LG엔솔 측은 “이번 일로 구성원 및 협력사, 가족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후속 절차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간 마음을 졸였던 동료들도 안도했다. 한 관계자는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TV를 통해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니 짠해서 눈물이 났다”며 “가족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석방 보류 소식이 나왔을 땐 정말 당황스러웠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원들이 남아주길 바랐기 때문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천만다행이었다. 향후 비자 문제도 전향적으로 개선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구금 사태는 일주일 만에 일단락됐지만, 한국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겼다. 2023년부터 한국이 대미 투자 최대국이 된 만큼, 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비자 시스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단기 상용 B-1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꼽힌다. B-1 비자와 ESTA로 가능한 업무 범위를 명확히 지정하면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B-1 비자는 실제 “산업 장비·기계의 설치 및 유지·보수”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민 당국의 실제 적용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한국 전문 인력의 단기 출장 비자 신설, 전문직종 외국인을 위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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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스톤=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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