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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슬람' 美 갱단 조직원이 가자지구 배급소 보안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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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슬람' 美 갱단 조직원이 가자지구 배급소 보안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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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대적하는 '현대 십자군' 자청 갱단
직원 320명 중 40명이 갱단 조직원 추정
"백인우월주의 KKK 아프리카에 고용한 꼴"


한 가자지구 주민이 지난달 22일 가자인도주의재단(GHF) 배급소에서 식량을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한 가자지구 주민이 지난달 22일 가자인도주의재단(GHF) 배급소에서 식량을 받은 뒤 돌아가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가자지구 구호단체인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의 경비를 맡은 하청업체가 반(反)이슬람 사상을 앞세운 미국인 폭력집단 단원을 다수 고용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GHF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배급소 근처에서 가자 주민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영국 BBC방송은 10일(현지시간) "GHF 경비를 담당하는 UG 설루션스가 미국 오토바이 갱단인 '인피델스 모터사이클 클럽' 소속원을 고용했다"고 전했다. BBC는 "UG 설루션스 직원 약 320명 중 최소 40명이 인피델스 단원으로 추정된다"며 "이 중 10명의 신원도 확인했고, 갱단 리더 조니 멀포드는 고위직인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UG 설루션스 직원은 하루에 약 980달러(약 136만 원), 고위급은 약 1,580달러(약 220만 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BBC방송이 '미국의 반이슬람 갱단'이라고 보도한 인피델스 모터사이클 클럽의 로고. 유럽 중세 십자군 원정 당시 십자가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인피델스 MC 페이스북 캡처

영국 BBC방송이 '미국의 반이슬람 갱단'이라고 보도한 인피델스 모터사이클 클럽의 로고. 유럽 중세 십자군 원정 당시 십자가를 상징으로 쓰고 있다. 인피델스 MC 페이스북 캡처

보도에 따르면 인피델스는 2006년 이라크 참전 미군들이 만든 단체다. 자신들을 이슬람과 대적하는 현대의 십자군으로 여기고, 유럽에서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사용됐던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았다. 갱단 리더 등 일부 조직원은 십자군 십자가와 1095(1차 십자군 원정 시작 연도)를 문신으로 새겼다. 이슬람 신도들이 낮 동안 금식하는 라마단 기간에 도발할 목적으로 이슬람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를 재료로 한 바비큐 행사를 개최한 적도 있다.

반이슬람 성향 갱단을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경비원으로 고용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제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5월 GHF가 배급을 시작한 이후 식량을 구하려던 가자 주민이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달 2일 기준 1,135명이 식량을 구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집계했다. 미국 무슬림 민권 단체 부국장인 에드워드 아메드 미첼은 "가자에서 인피델스 갱단을 고용하는 건 아프리카 수단에서 백인우월주의단체인 KKK를 고용하는 격"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반드시 폭력으로 이어지게 돼 있고, 현실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UG 설루션스는 경고사격은 인정했지만 민간인에게 발포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업체는 "멀포드는 30년 이상 미국과 동맹국을 지원한 경험을 가진 신뢰받는 인물"이라고 갱단 리더를 두둔했다. GHF 측은 개인의 취미나 직무 성과 등 보안 기준과 무관한 내용은 직원을 뽑을 때 심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인피델스 역시 BBC 보도 후 공식 페이스북 등에 자신들이 반이슬람 단체라는 주장을 부인했다. 이들은 "우리는 9·11 테러 등을 이끈 급진적 지하디스트 운동에 반대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굳게 믿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