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보청기? 난 그 정도 아냐" 난청 노인 87% '방치'…치매도 부른다

머니투데이 정심교기자
원문보기

"보청기? 난 그 정도 아냐" 난청 노인 87% '방치'…치매도 부른다

속보
미네소타주, 연방 이민 단속요원의 여성 살해후 트럼프 행정부 고소
9일 대한이과학회가 난청 환자에게 뇌의 전반적인 위축이 관찰된 병변을 설명한 발표 자료. /사진=정심교 기자

9일 대한이과학회가 난청 환자에게 뇌의 전반적인 위축이 관찰된 병변을 설명한 발표 자료. /사진=정심교 기자


난청 환자 상당수가 망설이는 게 '보청기 착용'이다. 보청기를 착용한 모습을 드러내기 꺼리는 데다, 비용 부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노인성 난청 환자 가운데 보청기 착용률은 13.9%(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난청 환자가 보청기 착용을 미룰수록 치매 유발 위험이 높아진다는 경고가 나왔다.

9일 대한이과학회가 귀의 날(9월9일)을 맞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대국민 귀 건강 포럼'에서 '보청기 조기 착용의 임상적 근거'를 주제로 발표한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박무균 교수는 "청력이 인지기능과 관련 깊다는 국내외 연구가 꾸준히 나온다"며 "난청을 방치해 보청기를 너무 늦게서야 착용하면 청각 재활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청력과 인지기능의 연관성은 신생아 때부터 나타난다. 신생아 청각 선별 검사에 따르면 난청 유무는 생후 1개월 이내에 검사하고, 3개월 때 난청을 확진한 후 6개월 이내 청각 재활을 시작해야 한다. 신생아 난청 환자의 보청기 착용은 언어 발달과 직결된다. 박무균 교수는 "난청은 학습 능력과도 밀접한데, 덴마크 2만2000여명 연구 결과 난청이 심한 그룹의 대학 진학률은 30%, 경도 난청 그룹은 40% 이하로 정상인(50%)보다 낮았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청각장애인의 무학(학교에 다니지 않음) 비율은 18.6%로 언어장애 환자(18.6%)와 함께 가장 높았다.

9일 대한이과학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대국민 귀 건강 포럼에서 연자들이 질의응답에 임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9일 대한이과학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대국민 귀 건강 포럼에서 연자들이 질의응답에 임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난청이 인지기능과 왜 관련 있을까. 박 교수는 "귀를 통해 말소리가 들어오면 뇌에서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를 쓴다"며 "이를 '노력 청취'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청취가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조기 난청 때부터 보청기를 착용하는 게 좋은 이유다.

하지만 난청 증상이 비교적 약한 '경도 난청' 환자들은 보청기 착용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게 대한이과학회의 우려다. 환자 스스로 자신이 난청인지 알아채지 못해 난청을 방치하기 쉬워서다. 박 교수는 "난청을 방치해 잘 듣지 못하는 기간이 길수록 뇌의 '청각피질'(청각 정보가 모이는 대뇌피질)이 퇴화한다"며 "청각피질이 퇴화하면 시각 등 다른 감각으로 대체되는데, 나중에서야 보청기를 끼면 소리를 들으려 할 때 다른 감각들이 청각을 방해한다"고 경고했다.

아직 보청기 착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도 난청에서도 보청기를 사용하면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2018년 영국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50세 이상 노인 7385명(정상 3574명, 경도 난청 3056명, 중등 난청 755명) 가운데 경도 난청 시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은 그룹은 인지기능(기억력·실행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사회적으로 격리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2018년 미국의사협회 공식 학술지인 자마(JAMA)엔 "노인성 난청은 인지기능 저하와 관련 있다. 노인에게 난청을 검진 기회 제공해, 조기 청각 재활을 시작하는 게 인지기능 저하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인구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비율이 높아진 만큼 '노인성 난청' 환자도 빠르게 늘었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빈약하다는 게 대한이과학회의 지적이다. 이날 '노인성 난청의 조기 진단과 치매 예방'을 주제로 발표한 문일준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난청 환자는 소리신호가 청신경을 제대로 자극하지 못해 소리 자극이 없어지는데, 이 때문에 뇌의 청각피질이 얇아지고 위축된다"며 "현재 국내에서 보청기 착용이 필요한 노인은 205만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66세 이상 노인성 난청 환자에 대한 국가별 지원책을 비교한 발표 자료.  /사진=정심교 기자

66세 이상 노인성 난청 환자에 대한 국가별 지원책을 비교한 발표 자료. /사진=정심교 기자


60세 이상이면서 치매가 없는 난청 환자 2953명을 20년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 결과에 따르면 70세 미만에서 보청기를 사용한 그룹은 사용하지 않은 그룹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61%나 낮았다. 치매 위험인자엔 난청(8%), 우울증(4%), 사회적 고립(4%), 신체활동 저하(2%)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난청을 제외한 나머지 인자가 난청과 동반되기 쉽다.

실제 난청 환자가 보청기를 멀리하면 청각을 통해 습득하는 정보의 양이 줄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인과의 정보 격차가 심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고립·격리되고 불안감·우울감을 키운다는 것이다. 문일준 교수는 "난청 환자가 보청기를 착용하면 치매 발병 위험을 18% 더 줄일 수 있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현재는 노인성 난청 환자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아쉽다"고 했다.


노인성 난청 환자 가운데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는 비율은 87%에 달한다. 경제적 부담이 큰 이유로 꼽힌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치매 관리 비용이 GDP의 0.8%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노인성 난청 환자에 대한 보청기 착용을 지원해 난청으로 인한 치매만 막아도 국가 재원을 크게 아낄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