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최우선 과제, 중간선거까지 계속될 듯
백악관 국경차르 “LG·현대차 같은 기업 단속 계속”
국토안보 장관 “필요한만큼 매일 작전 수행할 것”
美영사관 9곳 중 4곳 공석, 컨트롤 타워 대사도 부재
한국인 전용 비자 확충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워
백악관 국경차르 “LG·현대차 같은 기업 단속 계속”
국토안보 장관 “필요한만큼 매일 작전 수행할 것”
美영사관 9곳 중 4곳 공석, 컨트롤 타워 대사도 부재
한국인 전용 비자 확충은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워
현장대책반장인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8일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처리 센터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이제 곧 감옥에 갈 시간이에요.”
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은 X(옛 트위터)에서 플로리다주(州) 상·하원의원을 지낸 전직 민주당 정치인 린다 스튜어트에게 융단 폭격을 퍼부었다. 여기에 ‘좌표’를 찍은 건 트럼프와 직통이 가능하고 막후에서 인사·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진 강경 보수 성향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다. 스튜어트가 이날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올랜도의 링스 중앙역에 떴다는 글을 올렸는데, 루머가 “ICE 요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 것은 단속을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문제를 삼았다. 그러자 매가 지지자들이 들끓었고 급기야 제임스 우트마이어 플로리다 법무장관이 “법 집행관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며 수사를 지시하고 나섰다.
이는 트럼프가 재집권한 뒤 ICE의 불법 이민 단속을 바라보는 MAGA 세력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불법 이민 추방을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어 캠페인을 펼쳤고, 올해 1월 취임 당일 행정명령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자신의 반(反)이민 정책을 본격화했다.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설계한 ‘책사’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톰 호먼 백악관 ‘국경 차르’ 등의 주도 아래 미 전역에서 불법 이민 단속 작전이 불시에 벌어지고 있다. 애초 ICE가 법 집행 우선순위로 삼았던 남부 국경 지대에서 멕시코 출신 월경자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시선은 미국 내부로 향하고 있다. 지난 4일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단속이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백악관은 8일에도 ‘미드웨이 블리츠’라 명명(命名)된 시카고 지역 불법 이민 단속 작전을 홍보하며 갱 단원, 살인범 등을 체포한 성과를 알렸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을 단속할 당시 한국인 등 현장 직원들이 길게 늘어서 차례로 몸수색을 당하고 있다. /이민세관단속국 |
불법 이민 추방이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순위 국정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권의 명운(命運)이 걸려있는 내년 11월 중간선거 전까지는 이런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합법적인 비자를 들고 있는 시민들이 ‘불법 이민자’로 몰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지만 트럼프 정부는 여러 법적 논란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계 영주권자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돌연 구금돼 추방 위기에 직면해있는 사례도 있다. 호먼은 7일 CNN에 출연해 앞으로 현대차·LG 공장과 같은 단속을 “더 많이 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 역시 8일 영국 출장 도중 “모든 것이 전속력으로 진행 중이고, 미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만큼 매일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모든 기업이 미국에 올 때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도록 하는 훌륭한 기회”라며 “우리는 미국에 와서 우리 경제에 기여하고 사람들을 고용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에 미국 시민을 고용하고, 미국 법을 따르며 올바른 방식으로 일하려 하는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했다.
ICE가 지난 4일 단속해 구금한 한국인 300여 명 중에는 미국 공장·사무소 등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주재원 비자(L-1) 소지자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급을 한국 회사에서 받고 계약서 등에 역할이 명시가 돼 있으면 단기 상용 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ESTA) 등을 통해 미국에 들어와 기자재 설치, 시공 관리·감독 등을 해도 위법이 아니지만 ICE의 예상치 못한 단속에 현장에서 이런 부분을 충분히 소명하지 못해 한국인 구금자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미국 남부의 ‘경제 성장 엔진’이라 불리는 조지아는 최근 몇 년간 우리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가 집중돼 “한국 때문에 먹고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지만, ICE 단속 이후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나 지한파(知韓派) 버디 카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은 단속의 적법성을 강조하며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교 소식통은 “지금 보수 진영에서는 불법 이민 추방에 반하는 목소리를 낼 만한 정치적 공간이 없다”며 “이런 분위기 속 선의(善意)의 한국인·기업 피해자가 더 생길 수 있다”고 했다.
톰 호먼 백악관 국경차르. /AP 연합뉴스 |
이런 가운데 최일선에서 동향을 감지하고 미국 측과 협의해야 할 미국 내 영사관 9곳 중 4곳이 공석(空席)인 상태다. 애틀랜타의 경우 최근 몇 년 새 한국인 커뮤니티가 로스앤젤레스(LA)·뉴욕에 비견될 정도로 급격하게 커졌지만, 지난 6월 서상표 총영사가 정년 퇴임한 이후 줄곧 공석으로 돼 있었다. 이 때문에 조지아 단속 이후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대사관이 총영사를 파견해야 했다. 호놀룰루·휴스턴·뉴욕 총영사 역시 이재명 정부가 특임 공관장 귀국을 일괄 지시하면서 공석인데, 교민 숫자가 많고 우리 국민의 투자·여행 수요가 많은 곳이라 조지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경우 초동 대처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미국 현지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연방 정부 고위직을 접촉해야 할 주미 대사 역시 두 달 넘게 공석이고, 지난달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내정됐지만 한 달 가까이 미국 측으로부터 아그레망(agrément·주재국 부임 동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그레망은 전적으로 미국의 의지에 달린 일인데 지난 정부와 비교하면 속도가 늦은 편이다.
트럼프가 7일 “배터리·선박 인력을 불러 미국인을 훈련시키는 것을 검토하겠다”며 비자 확충을 시사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이 8일 미국에 들어와 카운터파트에 이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 역시 단기간에 이뤄질 일은 아니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 의회에 한국 국적자에게 최대 1만5000개의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발급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외국인이 미국 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를 주자는 취지의 법안이라 미국 우선주의 분위기 속 미국 정치인들이 앞장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미 조야(朝野)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로비가 필요한데 트렌드에 맞춰 일류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특정 한국계 로비스트가 10년 넘게 대사관 일감을 독점 수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워싱턴 DC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의회에 비준시키기 위해 하루가 머다하고 의회를 상대로 설명회·리셉션을 열었다”며 “비자 신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회담 때마다 ‘협조를 요청했다’는 덕담 수준으로는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외교부 차원에서 이를 어젠다 중 하나로 들이밀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미국 측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길에 오르고 있다. /장경식 기자 |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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