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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98] ‘물랭 루즈’ 댄서의 진짜 얼굴

조선일보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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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98] ‘물랭 루즈’ 댄서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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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 루즈에서, 1892~5년, 캔버스에 유채, 123×141c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소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 루즈에서, 1892~5년, 캔버스에 유채, 123×141c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소장.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의 ‘물랭 루즈에서’를 들여다보면 그림 오른쪽, 여자 얼굴을 그린 부분을 도려내려 캔버스를 세로로 잘랐다 다시 이어 붙인 자국이 선명하다. 화상(畫商)이 이 얼굴 때문에 그림이 안 팔린다고 생각하고 잘라냈던 것 같다. 얼굴 주인은 당시 파리에서 제일 잘나가던 나이트클럽 ‘물랭 루즈’의 댄서이자 가수 메이 밀턴이다. 때마침 두꺼운 무대 화장을 하고 조명 아래를 지나가는 바람에 기묘하게 시퍼런 얼굴이 돼버렸다.

밀턴 뒤, 뒤돌아 앉은 오렌지색 머리카락은 캉캉 댄스로 무대를 사로잡던 잔 아브릴, 서서 머리를 매만지는 여성은 전설적 댄서 ‘라 굴뤼’다. 인기 스타들 사이 신사들은 물랭 루즈의 단골들, 속된 말로 ‘죽돌이’다. 그러나 물랭 루즈 최고 ‘죽돌이’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로트레크였다. 화면 뒤쪽, 구부정하게 선 남자 옆의 유난히 키가 작은 이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레크는 왜소증을 앓은 데다, 어릴 때 낙마 사고를 당한 탓에 작은 키에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그의 부친은 막대한 재산과 고귀한 혈통을 가졌으나 말과 독수리, 연날리기에 열광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기행을 일삼았다. 관습을 저버리고 파격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화가가 아버지를 닮았음이 틀림없으나, 아버지는 말을 타지 못하는 아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상류 사회에서 낙마하듯 떨어져 버린 그는 술과 매춘부에게 몸을 맡긴 채 유흥가의 초라한 밑바닥을 그리다 1901년 9월 9일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잘라내야 할 만큼 기괴했던 메이 밀턴의 얼굴에서 화장을 지우고 조명을 내린 뒤의 진짜 모습은 로트레크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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