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 6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은 부산 반얀트리 복합리조트 공사의 준공예정 시기는 2024년 11월 24일이었다. 리조트 이용 예정일은 2025년 2월이었다. 착공신고서에 적혀 있는 날짜다. 그러나 실제 사용승인은 2024년 12월에 났고 사고가 났을 당시인 2025년 2월 중순에도 준공하지 못했다. 보통 공사가 준공된 후 이를 관할 지자체와 소방당국에서 살펴본 후 건물을 사용해도 된다는 사용승인을 내준다. 부산 반얀트리 복합리조트는 공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용승인이 났고 공사 중에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40여 곳의 하청업체가 인테리어 자재를 곳곳에 쌓아놨고 이게 화재를 더욱 키웠다. 화재 참사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 작업자는 “토목 공사가 늦어졌고 그러다 보니 골조공사도 늦어졌다”고 했다. 이 현장은 하루 2억9000만원에 달하는 지체상금(손해배상금) 등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다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후 같은 달 27일 시공사인 삼정기업과 삼정이앤씨는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양사는 이 화재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1000억원 이상의 공사비를 회수하기 어렵게 됐다고 법원에 회생 신청의 이유를 밝혔다.
반얀트리 화재는 한국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빈번한 사고의 구조를 돌아보게 한다. 정해진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엄청난 지체상금을 내야 하고 기업은 이를 덜 내기 위해 밤샘작업 등 무리한 작업을 벌이다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2월 16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과학수사대 화재감식팀,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립재난안전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2월 14일 오전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작업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 뉴스1 |
삼정기업이 하루에 2억9000만원씩 물어야 했던 지체상금은 정해진 기한 내에 계약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사업 시행사에게 지급하는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놓은 금액이다. 미국이나 유럽, 중동 등 주요국의 건설현장도 이런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s·LD)은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선 지체상금의 상한선을 계약금의 10%로 정하는 관행이 있다. 유럽에서는 도급계약액의 5~10% 범위에서 설정하고, 국제 건설 계약의 표준으로 많이 쓰이는 국제 컨설팅 엔지니어 연맹(FIDIC) 계약 조건도 보통 계약금액의 10%를 상한선으로 정한다.
상한선이 있는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한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공사가 지연되면 공사대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7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하청업체가 원청인 건설사를 상대로 낸 공사대금청구소송에서 공사 지연을 이유로 대금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지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획재정부 예규(공사계약 일반조건 25조 1항)에는 지체상금의 한도액이 30%로 정해놨지만, 이는 관급공사에만 적용되고 있다.
한국과 다른 국가들의 이런 차이는 지체상금을 규정하는 인식 때문이다. 주요국들은 지체상금이 공사가 지연됐을 때 손해에 대한 배상액으로 판단한다. 또 법원이 만약 손배 예정액이 실제 발생 가능한 손실에 비해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이를 집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1915년 영국 최고법원이던 상원(House of Lords)이 지연 배상금은 벌금(penalty)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놓은 후 영국뿐 아니라 여러 국가의 계약법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은 지체상금은 공사가 지연됐을 때 손해에 대한 배상액이 아닌 일종의 벌칙으로 활용되며 막대한 부담을 지게 한다.
지난 8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광명~서울고속도로 등 이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공사 현장에서 잇따른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휴가 중에 긴급 지시했다. 면허 취소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동아건설산업이 국내에선 유일한 사례다. 건설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지난 9월 3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한 공사현장에서 50대 외국인 근로자가 추락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산재 단속, 예방이 건설 경기를 죽인다고 항의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건설 현장 추락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조금만 조심하면 다 피할 수 있는 사고가 잦다. 사람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느냐”고 말한 다음 날 발생한 사고다. 시공사인 GS건설은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죄했다. 9월 6일에도 롯데건설이 시공 중인 경남 김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1명이 굴착기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최근 이 대통령의 격한 발언은 대통령으로서 소중한 인명(人命)이 희생되는 현장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계속 발생하는 건설현장 사고는 단순히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거나, 조금만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데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공사기한이 늦어지면 한도액이 없는 지연배상을 물어야 하는 건설사와 하청 업체들. 공사비를 한 푼도 못 받는 것은 물론 벌금까지 물어내야 하거나 유동성 위기에 몰려 회생절차를 신청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는 기업들. 관급공사마저 공사기한이 늦어지면 국제적 관행(10%)보다 3배 이상 높은 비율로 배상하도록 한 정부 규정.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시간에 쫓기는 국내 건설현장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대통령의 격노가 아무리 잦다고 해도 계속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가 반얀트리 부산 참사에서 돌아봐야 할 교훈이다.
정해용 기자(jhy@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