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창작 오페라 ‘더 라스트 퀸’ 일본 공연 장면.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월선 제공 |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1901~1989) 여사는 ‘마사코 여왕’으로 불린 일본 왕족 출신이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 이은(1897∼1970)과 16살에 결혼했다. 신문 보도를 통해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접했으니, 그야말로 정략결혼이었다. 1963년 한국으로 들어왔고, 남편 사후에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혔다. 이방자의 사연 많은 삶을 다룬 일본 오페라가 서울 무대에 오른다. 재일동포 소프라노 전월선(67)이 각본·기획·제작과 주연을 맡은 창작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이다.
“저처럼 일본에서 나고 자란 한국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이죠.” 11월 공연을 앞두고 서울에 온 전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나 “공연을 관람한 일본인들이 한-일 간 과거 역사에 관심을 가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페라는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됐다.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초연 이후 재연을 거듭하며 지난 3월 비와코홀 공연까지 모두 10차례 공연됐다. 한국 무대(11월19~20일 서울 광림아트센터)는 처음인데,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공연이다.
이 작품엔 10년에 걸친 그의 땀과 열정이 스며 있다. 2005년 작품 구상에 들어가 수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발품을 팔았다. 일본에선 이방자의 조카와 측근들을 만나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선 비서 등 가까웠던 인물을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자필 편지와 일기, 사진, 음성 자료 등을 취재해 직접 대본을 썼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사실 그대로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정략결혼 희생양이었는데, 나중엔 정말로 남편과 한국을 사랑하게 돼요.” 전씨는 “그분의 삶이 가슴에 와닿았다”고 창작 계기를 설명했다.
작품은 이방자의 삶 전체를 조명한다. 마지못해 이뤄진 정략결혼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일본 사람 이방자가 왜 한국 사람으로 변신했는지도 중요하게 다룬다. “내게는 두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내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오페라는 이방자의 이런 발언을 소개하며 ‘평생 두개의 조국을 섬겨야 했던 운명의 여인’으로 그를 묘사한다. 이방자는 1970년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엔 여러 특수학교를 세우는 등 장애인 복지 사업에 헌신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사연 많은 삶을 다룬 일본 창작 오페라 ‘더 라스트 퀸’은 재일동포 소프라노 전월선씨가 각본을 쓰고 주역을 맡았다. 전월선 제공 |
음악은 서양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일의 전통 리듬을 접목했다. 1시간20분 내내 전씨가 의상을 바꿔 입으며 소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이방자를 1인 다역으로 연기한다. 혼성 4중창단의 대사와 노래가 곁들여지는데, 영친왕은 대사 없이 춤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작품이 관심을 끌면서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됐다. 전씨는 “공연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일본 관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남과 북, 일본에 걸친 전씨의 독특한 가족사와 겹치면서 이 작품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는 학도병이었다. 16살에 경남 진주에서 일본으로 끌려와 역시 진주 출신인 어머니와 결혼했다. 부모는 어렸을 적부터 그에게 아리랑을 들려줬다.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저명한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1935~2024)가 졸업한 도호학원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토스카’ ‘카르멘’ 등 여러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노래했다.
북한도 그의 가족사에 얽혀 있다. 자신이 두살배기이던 1960년 오빠들이 북송선을 탔다는 얘기를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게 됐다. 1985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 앞에서 공연한 뒤 오빠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줄곧 한국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고, 1994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전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앞에서도 노래했으니, 남북한과 일본 정상 앞에서 노래한 유일한 가수일 것”이라며 웃었다. 자서전 ‘해협의 아리아’는 일본 유명 출판사인 쇼가쿠칸 논픽션 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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