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할 수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종종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해결하며, 주변의 도움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은 매력적이고 듬직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차 가까워지거나 친밀해질수록 그 흔들림 없어 보이는 자율성이 사실은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기 위한 거리두기 전략일 때가 있습니다. 겉모습과 달리 그 안에는 상처받을까 조심하는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직장인 ㅂ씨는 오늘도 여자 친구와 주말 계획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영화를 보고 저녁에 친구들과 합석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ㅂ씨는 듣기만 해도 피곤했습니다. “또 만나? 우리 요즘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냐?”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결국 여자 친구의 눌러두었던 화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커지자 ㅂ씨는 “나중에 얘기하자”며 대화를 끊고 돌아섰습니다. 핸드폰은 계속 울리고 메시지는 쌓여가지만, 전원도 꺼버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고요한 방 안에 앉아 있는 지금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반응을 애착유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애착유형이란 어린 시절 중요한 사람과 맺은 관계 경험이 성인이 된 뒤에도 인간관계의 방식과 친밀감을 다루는 패턴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연인이나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특히 잘 드러납니다.
ㅂ씨의 모습은 회피성 애착유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충분히 수용받지 못하거나, 의존하려 할 때 거절당한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결국 마음을 숨기고 혼자 버티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지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며, 타인과는 뚜렷하고 단단한 경계를 세우려 합니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에게 무심하거나 닫혀 있는 모습, 때로는 차갑고 냉정한 사람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모습은 오랜 상처를 피하려는 자기방어적 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요?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혼자 있고 싶은 상반된 마음이 교차하지는 않나요? 사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상대방이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욕구’가 클수록 이러한 양가감정은 더욱 강하게 일어납니다. 물러나고 싶어지는 순간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이 지금의 관계인지, 아니면 내 안에 오랜 기간 묵어 있던 두려움과 상처인지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자각이 회피가 아닌 안전하고 편안한 연결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거리를 두고 싶다”라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 완전히 물러나기보다 “잠시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짧게라도 건네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작은 표현과 약속의 실천이 쌓일 때 관계는 회피가 아닌 연결의 경험으로 바뀌며 결국 서로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성장해갑니다.
김영주 온더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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