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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기준대로… 담배 유해 성분 44종 공개한다는 정부

조선일보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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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기준대로… 담배 유해 성분 44종 공개한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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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유해성관리법 실효성 논란
오는 11월 1일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배에 포함된 유해 성분을 공개하도록 한 ‘담배유해성관리법’이 시행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법이 시행되면 담배 제조업체와 수입 판매업체는 3개월 안에 유해 성분 검사를 검사 기관에 의뢰해야 한다. 담배 제품마다 이 검사를 2년 주기로 계속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새로 출시되는 담배는 판매 개시일로부터 한 달 안에 검사를 의뢰하도록 규정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통해 내년 말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담배 제품들의 유해 성분 검사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법 시행을 앞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 3월 행정 예고한 담배 유해 성분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공개 대상으로 지정된 유해 성분은 궐련형 일반 담배(전자 담배 포함) 44종, 액상형 전자 담배 20종이다. 하지만 이 중 궐련형 담배의 유해 성분은 1997년 미국 암예방연구소 소속이던 디트리히 호프만 박사가 담배 연기에서 확인한 유해 성분을 44종으로 정리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담배에는 7000여 가지 화학물질과 70종이 넘는 발암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부가 약 30년 전 기준으로 유해 성분 검사를 진행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뿐 아니라 입법 공백으로 검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유사 ‘담배’도 문제다.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제품이 대표적이다. 국내 법체계상 담배는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로 만든 것’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합성 니코틴은 유해 성분 검사·공개 등의 의무가 없다. 여기에 ‘무(無)니코틴’을 표방하는 유사 니코틴 전자담배 등이 검사 대상에서 빠져 있는 만큼, 아예 법을 개정해 이런 부분까지 규제 범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담배규제연구센터는 “니코틴 유사 물질은 제품에 따라 더 강한 니코틴 효과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또 유해 성분 공개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담배는 해로운데, 공개된 유해 성분만 보고 ‘더 해로운 담배’와 ‘덜 해로운 담배’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수치 공개 이후 흡연자들의 금연이 확산되는 게 아니라, 흡연자들이 ‘덜 해로운 담배’로 갈아타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담배유해성관리법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에 대해 “이 법 시행으로 검사·공개하게 되는 담배 유해 성분 수가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표준화기구(ISO)보다도 더 많은 편이다. 앞으로 항목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궐련형 담배 기준으로 WHO는 유해 성분 20종, ISO는 28종을 검사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보다 약 2배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담배 유해 성분을 검사·공개하는 캐나다(44종)와 같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유해 성분 공개의 당초 목적인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 미흡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당 성분이 흡연을 통해 인체에 미치는 독성과 위험을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고, 단순히 특정 성분의 수치만 나열할 경우 ‘정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해 성분 정보의 공개 범위나 방법은 담배유해성관리정책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게 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담배 제품 유형별로 할지, 브랜드별로 할지, 전체 담배를 뭉뚱그려 유해 성분과 인체 독성 및 발암 영향 등의 정보를 공개할지 등을 놓고 정책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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