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본시장의 특례상장 제도가 기로에 섰다. 제도 도입 이후 20년간 수백 곳의 기업이 이 제도를 통해 증시에 입성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제도 본연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력이라는 장밋빛 약속이 수익성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면서,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은 물론 시장 전체의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도 상장유지 요건을 강화하고 저성과 기업의 퇴출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는 중이다.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특례상장 제도의 명암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필드뉴스 = 강현창 기자] 특례상장 제도가 도입 20년을 맞았지만 '혁신 기업의 성장 사다리'라는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2005년 이후 200개가 넘는 기업이 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했으나, 이 중 80% 이상은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70%는 시가총액이 쪼그라들었다. 양적 확대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질적 성장에는 명백히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뻥튀기 상장' 논란을 빚은 파두 사태부터 허위 공시로 상장폐지된 셀리버리, 대규모 유상증자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네오이뮨텍까지, 잇따른 문제 기업의 등장은 제도 자체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당국의 근본적인 수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모가 거품 논란…주관사 책임 강화 필요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특례상장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고질적인 공모가 거품 논란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반도체 팹리스 기업 파두다. 파두는 상장 전부터 매출이 급감한 사실을 숨긴 채 기업가치를 부풀려 상장했고, 뒤늦게 실적이 공개되자 주가가 폭락하며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결국 이 사건으로 상장 주관사였던 증권사들은 검찰에 송치되는 수모를 겪었다.
과거부터 주관사가 높은 수수료 수익을 위해 기업가치 뻥튀기를 방치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주관사의 부실한 실사와 불투명한 공모가 산정 관행이 시장 왜곡의 주범으로 꼽힌다.
이에 기술특례 상장 기업의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지면 주관사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주식을 되사주는 '풋백옵션(환매청구권)'을 도입했지만 이를 적용한 기업은 찾기 어렵다.
지난 2023년과 2024년 데이원컴퍼니와 아이지넷 등 일부 특례상장 기업에 이 조치가 적용됐지만,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수십억 원 규모의 잠재 손실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증권업계의 부담이 크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수요예측 제도를 개편하고, 장기 보유를 확약한 기관투자자에게 공모주를 우선 배정해주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등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진척은 없는 상태다.
현재는 주관사가 미래 실적을 과대 추정하는 관행을 억제하고, 상장 후 주가 괴리가 발생하면 주관사 보유 지분의 보호예수 기간을 연장하는 등 사후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제도적인 안전판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유증 남발…주주 보호 제도의 미비
상장 직후 반복적인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에게 손실을 떠넘기는 관행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다.
많은 특례상장 기업들이 IPO로 조달한 자금을 단기간에 소진한 뒤 곧바로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나서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네오이뮨텍과 강스템바이오텍, 큐라클 등 최근에 주주배정 유증을 실시한 기업들도 모두 특례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곳이었다.
모두 공모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유증을 실시하면서 초기 일반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 할인율을 현행 최대 30%에서 10%로 제한하고, 경영권 분쟁 시에는 유상증자를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금융당국도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집중 심사를 예고하며, 증권신고서 심사를 통해 무리한 증자를 제어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IPO 자금 사용처에 대한 검증과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요구다.
◇지배구조 붕괴…대주주 엑시트와 회사 몰락
초기 지배주주들이 상장을 통해 자금을 회수한 뒤 회사를 떠나면서 경영권이 불안정해지고 결국 주주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현재 제도로는 막기 힘든 피해다.
기술특례 1호 기업인 헬릭스미스는 최대주주가 반복적으로 교체되고 4년 넘게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신약 개발 성과 없이 표류하고 있다. SKAI(옛 비트나인)는 전환사채(CB)를 남발한 뒤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매각하며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특례상장이 혁신 기업의 자금줄이 아닌 대주주의 '엑시트(자금 회수)' 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경영권 매각이나 과도한 CB 발행 등 구조적 취약성을 상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지속적인 요구다.
하지만 논의만 뜨겁고 당국의 대응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관리종목 지정 및 상폐 요건강화…'좀비기업' 조기 퇴출 필요
금융투자업계에서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 중 하나는 상장 후 사후관리가 부실해 부실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이 시장에 장기 존속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특례상장 기업에 매출액이나 손실 요건에 대해 3~5년간 관리종목 지정을 유예하는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과도한 유예기간 탓에 상장 후 5년이 지나도록 매출이 전무하고 적자만 쌓인 기업들이 시장에 버티며 투자자 피해를 키웠다.
최근 상장폐지가 결정된 파멥신이나 거래정지 상태인 EDGC, 피씨엘, 엔케이맥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거래소는 관리종목 지정 기준인 시가총액과 매출액 최소치를 단계적으로 높여 부실기업 퇴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또한 2년 연속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은 기업에 주어지던 개선기간을 대폭 단축해 즉시 상장폐지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필요는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한 조치라고 의견을 내고 있다.
상장 유지 기준인 시가총액의 경우 특례상장 기업의 특성 상 특정 테마 편승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매출 또한 회계적인 기법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보니 촘촘한 규제가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특례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미래 실적 전망치를 중간 점검해, 계획에 현저히 미달할 경우 투자환기종목으로 지정하는 등 경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주의 IPO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 필요
특히 업계에서 가장 문제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상장' 자체가 한국거래소의 실적이 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특례상장 제도가 바로 서려면 IPO 건수 자체를 성과로 여기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거래소는 코스닥 활성화를 명분으로 특례상장의 양적 확대를 내세웠지만, 그 결과가 부실기업의 양산과 투자자 손실 누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 기업의 숫자보다 개별 기업의 내재가치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거래소가 공모가 검증부터 유증 규율, 지배구조 변동 공시, 관리·퇴출, 불공정거래 대응까지 성적표를 묻는 심판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
<저작권자 Copyright ⓒ 필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