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극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 강릉의 한 농촌 마을에서 지난달 21일 인부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우산 모자를 쓴 채 쪽파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
올해 여름철(6~8월)은 6월 하순 이른 무더위가 시작된 이후 폭염과 폭우가 반복됐고, 집중호우와 가뭄 지역의 양극화 양상이 뚜렷한 특성을 보였다.
기상청은 4일 ‘2025년 여름철 기후특성’ 자료를 발표했다. 올해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가장 더웠던 지난해(25.6도)보다 0.1도 높아 역대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평년(1991~2020년)보다는 2도 높았다. 6월 말부터 이른 더위가 나타나, 집중호우로 무더위가 주춤했던 7월 중순과 8월 전반부를 제외하고 8월 하순까지 무더위가 지속됐다. 장마철 이후인 7월 말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이례적으로 6월 말부터 일찍 무더위가 찾아왔다. 6월29일~7월10일 2주가량 전국 일평균 기온은 역대 1위(7월4일만 2위)를 기록했고, 7월8일에는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낮 최고기온이 40도 이상(광명 철산동 40.2도, 파주 광탄면 신산리 40.1도)으로 오르는 등 한여름 날씨가 나타났다. 7월 하순과 8월 중하순에도 밤낮으로 무더위가 지속됐다. 8월18~25일 전국 일평균기온이 1~2위를 기록하며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8월23일) 이후에도 늦더위가 이어졌다. 8월 하순 전국 평균기온도 27.8도로 평년보다 3.9도 높아 역대 1위를 경신했고, 강원 강릉, 대관령 등 13개 지점에서 8월 하순 일 최고기온 1위를 기록했다.
고기압 정체 현상으로 6월말부터 이른 무더위
지난 7월31일 서울 청계천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7월30일 서울 열대야일은 기상관측이 처음 이뤄진 1908년 이후 117년만에 7월 최다 열대야일 기록을 세웠다. 연합뉴스 |
올해 여름철 전국 폭염일수는 28.1일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평년보다 17.5일 많았다. 남부지방과 동해안을 중심으로 경북 구미, 전북 전주, 강원 강릉 등 20개 지점에서 관측이래 가장 많은 폭염일수를 기록했다. 대관령은 1971년 관측 이래 처음으로 폭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름철 폭염일수는 1위, 2위는 각각 2018년(31일)과 1994년(28.5일)이다.
전국 열대야일수는 15.5일로 역대 4위를 기록했고, 평년보다 9일 많았다. 특히 서울은 열대야일수가 평년(12.5일) 대비 3.5배가 넘는 46일로 1908년 관측이래 가장 많았다. 2위는 2024년(39일)이다. 부산, 인천, 강원 강릉, 속초, 전남 목포, 충북 청주도 관측 이래 열대야일수가 가장 많았다. 일반적으로 열대야는 7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올해는 무더위가 일찍 시작되며 광주(6월19일), 대전(6월19일), 부산(7월1일) 등 21개 지점에서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열대야가 기록됐다. 여름철 열대야일수 1~3위는 1위 2024년(20.2일), 2위 2018년(16.5일), 3위 1994년(16.5일)이다.
기상청 제공 |
올해 6월 말 이른 무더위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기상청은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과 대기 상층에서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 고기압이 정체되는 ‘고기압 구조’(CGT·Circumglobal Teleconnection) 형성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시지티는 주로 북반구 여름철에 몬순(계절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계절풍) 활동과 관련해 대기 상층에서 유럽-인도 북서부-한국-태평양-북미 부근에 고기압이 머무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하층 기류를 안정시키고 구름 형성을 억제해 일사량을 증가시켜 폭염을 발생시킨다.
7월 하순부터는 티베트트고기압이 북태평양고기압과 함께 ‘이중 솜이불’처럼 우리나라 상공을 덮어 기온이 더욱 상승했다. 올해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일찍 확장하고 여름철 동안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 원인은 필리핀 인근인 열대 서태평양의 대류 활동 강화와 북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 때문인 것으로 기상청은 분석했다.
2025년 여름철 고온 원인 모식도. 기상청 제공 |
장마철인데도 평년 대비 강수량 55%
호우 특보가 발효된 지난 8월3일 오후 전남 무안군 한 아파트 단지 인근 도로가 빗물에 잠겨 있다. 독자 제공. 연합뉴스 |
올해 여름철 전국 강수일수는 29.3일로 평년보다 9.2일 적었고(하위 5위), 강수량은 619.7㎜로 평년(727.3㎜) 대비 85.1%로 적었다. 다만 집중호우가 단시간에 국지적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고, 특히 7월 중순과 8월에는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7월16~20일에는 상층의 찬공기를 동반한 기압골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 전국적으로 200~700㎜의 매우 많은 비가 내렸다. 상층 기압골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그린란드 부근 북대서양에서부터 동아시아에 걸쳐 기압골과 기압능이 물결처럼 이어지는 파동이 세게 요동치면서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강하게 뒤섞이며 집중호우 등 극단적인 날씨를 일으키는 ‘중위도 대기 파동’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또 7월17일 충남 서산(시간당 114.9㎜), 경남 산청(86.2㎜), 광주광역시(76.2㎜), 7월19일 경남 합천(78.6㎜) 등에는 극한호우가 쏟아져 1시간 최다강수량 7월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8월 전반의 경우, 3~4일에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충청 이남 지역에,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유입된 고온다습한 공기와 상층 기압골에 동반된 찬 공기 사이에서 형성된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9~12일에는 남해안, 13~14일에는 수도권과 강원 영서를 중심으로 200㎜ 이상의 많은 비가 내렸다. 특히 서해상에서 강하게 발달한 비구름대가 유입되며 3일에는 전남 무안과 함평, 13일에는 수도권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1시간 최다강수량이 100㎜를 넘는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2025년 여름철 전국 강수량(왼쪽)과 퍼센타일 분포도. 기상청 제공 |
올해 장맛비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빠르게 확장해 평년보다 일찍 시작되고, 일찍 끝났다. 제주도는 6월12일,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6월19일에 장마철이 시작돼 평년보다 각각 7일, 6일, 4일 빨랐다. 제주도는 역대 가장 이른 6월26일, 남부지방은 두번째로 이른 7월1일에 장마가 종료됐고, 장마철 기간이 각각 15일과 13일로 역대 두번째로 짧았다. 역대 장마철이 가장 짧았던 해는 1973년으로 중부·남부지방 6일, 제주도 7일이었다. 올해 중부지방의 장마는 7월20일에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를 중심으로 많은 비를 뿌린 뒤, 평년보다 6일 일찍 종료됐다. 올해 장마는 짧은 기간 동안 정체전선이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장맛비를 뿌리지 않고 6월20~21일, 7월 중순 한두 차례 많은 비가 집중되는 ‘마른 장마’ 양상을 보였다. 장마철 전국 강수량은 200.5㎜로 평년(356.7㎜) 대비 55%로 적었고(하위 9위), 강수일수도 8.8일로 평년(17.3일) 대비 절반 수준(하위 4위)에 그쳤다.
강원 영동 가뭄, 태백산맥 지형과 동풍 불지 않은 게 원인
지난 8월31일 강원 강릉시민의 87%가 사용하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홍제정수장에서 전국에서 달려 온 소방차들이 운반해 온 물을 쏟아붓고 있다. 이날 강릉시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계속된 가뭄으로 14.9%까지 뚝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 수도 계량기 75% 잠금 하는 강력한 제한급수가 시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특히 강릉을 중심으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영동 지역은 4월19일부터 기상가뭄(최근 6개월 누적강수량이 과거 같은 기간의 평균 강수량보다 적어 건조한 기간이 일정기간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 지속 중이다. 강원 영동의 올해 여름철 강수량은 232.5㎜로 평년(679.3)㎜의 34.2% 수준이고, 강수일수도 24.7일로 평년보다 18.3일 적었다. 여름철 강수량과 강수일수 모두 역대 최저 기록이다. 다른 지역들은 정체전선과 저기압 등의 영향으로 국지적으로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렸지만, 강원 영동 지방에는 비가 적게 내렸다. 그 이유에 대해 기상청은 “태백산맥으로 인한 지형효과로 강수량 적었다. 또 이 지역은 동풍 계열의 바람이 불 때 많은 비가 내리는데,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남서풍이 우세하면서 동풍 계열의 바람이 불지 않아 강수량이 매우 적었다”고 설명했다.
2025년 여름철 500헥토파스칼(hPa) 지위고도 편차와 850hPa 바람벡터. 기상청 제공 |
올여름 우리나라 주변 해수면 온도는 23.8도로 최근 10년(2016~2025년) 중 두번째로 높았다. 1위는 지난해(24도)였다. 6월은 19.3도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0.3도 낮았지만, 6월말부터 북태평양고기압 확장에 따른 일사량 증가로 7월은 24.6도, 8월은 27.5도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각각 1.3도, 1.1도 높았다. 해역별로는 서해 22.7도, 동해 23.5도, 남해 25.2도로 최근 10년 평균보다 각각 0.8도, 0.4도, 0.8도 높았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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