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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인류, 평화냐 전쟁이냐”… 美 대신 ‘운전대’ 잡겠다는 中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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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인류, 평화냐 전쟁이냐”… 美 대신 ‘운전대’ 잡겠다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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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연설… 시 주석 의도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앞줄 가운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외국 정상들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 80주년 기념식 행사를 위해 천안문 연단으로 걸어가고 있다./신화 연합뉴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앞줄 가운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외국 정상들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 80주년 기념식 행사를 위해 천안문 연단으로 걸어가고 있다./신화 연합뉴스


“인류는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대결이냐, 상생이냐 제로섬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일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반(反)서방국가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이같이 말했다. 직접적으로 ‘미국’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평화·대화·상생의 중국’ 대(對) ‘전쟁·대결·제로섬의 미국’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지난 80년간 미국이 구축해온 국제 질서를 스스로 허무는 틈을 타,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는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를 이번 열병식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2025년 9월 3일 천안문 망루 - 김정은, 시진핑 바로 옆자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망루에 나란히 서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집권하던 1959년 이후 66년 만이다. /신화 연합뉴스

2025년 9월 3일 천안문 망루 - 김정은, 시진핑 바로 옆자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 망루에 나란히 서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집권하던 1959년 이후 66년 만이다.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은 연설에서 “중국 인민은 평화·발전의 길을 고수하며 각국 인민들과 손잡고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도 했다. 인류 운명 공동체는 시진핑 집권기부터 중국이 자국 중심 역내 질서를 구축하려고 만든 개념으로,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개발도상국들이 미국보다 중국과 협력해야 함께 번영할 수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시진핑은 또 “혈육으로 만리장성을 쌓아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외세 침략에 맞서 완승을 거뒀다”며 “중국 인민은 굳건한 결의로 강대한 적과 불굴의 의지로 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고 화합하며 서로 도울 때만 공동의 안보를 유지하고,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며, 역사적 비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에 대항하는) 푸틴 대통령까지 참석한 ‘무력 시위’로서 중국이 외세 압력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중국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견제하려는 국가들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철저한 대미 메시지가 담긴 전승절”이라고 했다.

시진핑이 연설에서 ‘평화 대(對) 전쟁’ 구도를 특히 강조한 것은 지난 10년간 미·중 힘의 균형이 바뀌며 국제 질서가 달라진 현실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웬티 성 연구원은 “시진핑은 판이 뒤집혔다고 느끼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운전대를 잡게 됐다고 판단한다”면서 “최근 국제 불확실성의 주된 원인으로 중국의 전랑 외교보다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거론되는 틈을 파고든 것”이라고 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2018년 이후 무역·기술·군사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무력에 의한 영토 변경 금지’라는 전후 규범이 시험대에 오른 상황을 시진핑이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시진핑은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패권 질서)에 맞서는 반패권적 비전을 의도적으로 선포했다”고 했다.

서방이 보이콧하는 정상들을 총집결시켜 ‘비(非)서방 연대’의 외연을 과시하는 효과도 노렸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은 “중국은 진영 구축을 반대하는 그간의 대외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중국은 글로벌사우스(개발도상국)로 뭉치자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미·중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앨프리드 우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시진핑은 미국이 지배하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에 도전해 중국이 신뢰할 수 있으며 정당한 대안임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했다.


시진핑이 2027년 8월(창군절)까지 ‘세계 일류 군대’ 건설에 속도를 내며 대만 문제 등 자국의 핵심 이익에서 더 이상 외부와 타협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진핑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은 세계 일류 군대 건설에 속도를 내고, 국가 주권·통일·영토 완전성을 수호하여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전략적으로 지탱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강조하는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전성은 양안(중국과 대만) 통일과 남중국해 문제 등을 뜻한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부상 중인 중국’이 아니라 ‘부상한 중국’을 이번 열병식에서 직관적으로 보여줬다”고 했다.

다만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는 모양새는 국제 관계에서 시진핑에게 추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 교수는 “중국은 다극화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중심이 되는 구조를 지향한다. 반패권을 주장하지만 사실상 중국 주도의 천하 질서를 지향해 새로운 패권을 역시 주장하는 꼴”이라며 “결국 미국 모델을 부정하면서 미국 모델을 차용하고 있고, 국가 간 상호 연계성도 약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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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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