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자 탈모’ 못 피한 꽃미남 배우의 아이콘…러시아 푸틴이 됐다 [2025 베네치아영화제]

[2025 베네치아영화제] 올리비에 아사야스 ‘크렘린의 마법사’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영화의 준거점입니다.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가 열리는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황금사자상 후보인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작 소식을 빠르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의 한 장면. 왼쪽은 블라디미르 푸틴을 연기한 배우 주드 로, 오른쪽은 푸틴을 ‘현대의 차르’로 연출한 바딤 바라노프를 연기한 폴 다노. [베네치아영화제]

현재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열리고 있는 베네치아영화제에선 깜짝 놀랄 만한 한 명의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재 푸틴이 베네치아영화제에 얼굴을 비춘 건 아니고, 푸틴을 연기한 배우의 연기가 푸틴과 너무나도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푸틴 역을 맡은 그 배우는, 놀랍게도 영화 ‘클로저’ 주연이었던 미남 스타 배우 주드 로였습니다.

앞머리 ‘M자 탈모’ 때문에 예전만은 못하다 해도, 한 시대를 대표했던 미남 할리우드 스타였던 ‘섹시 아이콘’ 주드 로가 푸틴을 연기하다니, 사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30년쯤 지나 푸틴이 스크린에 모습을 비쳤을 때,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 곳곳에선 ‘헉’ 하는 탄성과 웅성거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어떻게 미디어를 조작해 권력의 성좌에 올랐는지를 탐구하는 풍자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가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황금사자상을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도섬 팔라초 델 치네마에서 ‘크렘린의 마법사’를 살펴봤습니다.

‘크렘린의 마법사’는 프랑스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 삼습니다. 202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푸틴이 미디어 조작으로 권력의 정점에 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는 한 1990년대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직후, 한 미국 기자의 시선을 먼저 비춥니다.

이 기자는, 1920년대 활동했고 조지 오웰의 ‘1984’에 영향을 끼친 작품 ‘우리들(We)’를 집필했던 잠야틴(1884~1937)과 관련한 글을 읽다가, SNS로 한 남자와 약간의 논쟁을 벌입니다. 소설 ‘우리들’은 전체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인데, 이 기자와 한 남자 간의 언쟁이 붙은 것이지요. 이 남자의 이름은 바딤 바라노프. 그는 기자를 친절하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기자가 찾아간 바라노프의 서재엔 잠야틴의 책뿐만 아니라, 100년 전 책들이 즐비했습니다.

바라노프는, “한 세기 전의 책들을 수집하는군요”란 기자의 말에 “아니오. 수집이 아니라 난 그 책들을 읽습니다. 그게 내가 하는 일의 차별점”이라며 웃으며 말합니다. 바라노프는 소파에 앉아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기자에게 이야기합니다. 바라노프는 정치적 야망으로 가득했지만 자기 신분을 노출하길 꺼렸던 권력자 푸틴을 미디어의 한복판에 끌어내 ‘현대의 차르’로 만들어낸 문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도섬의 베네치아영화제 ‘크렘린의 마법사’ 프리미어 상영에 등장한 배우들. 왼쪽부터 단드레이 자야츠, 주드 로, 알리시아 비칸데르, 폴 다노. [EPA·연합뉴스]

시간을 거슬러 때는 1990년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기득권의 꼭두각시’였습니다.

옐친은 시종일관 말을 더듬고,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담화용 프롬프트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나약한 신세입니다. 이때, TV 프로듀서였던 바라노프는 한 남성으로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푸틴을 미디어의 중심에 올려놓으라’는 제안이었습니다. 푸틴은, 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의 국장이었는데 그가 미디어에서 비칠 이미지를 ‘설계’하라는 강력한 지침이었습니다.

바라노프는 한때 아방가르드 연극을 연출하다가 결국 방송국에서 저질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미션은, 그러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에게 매우 흥미로운 과제였습니다.

여자친구에게 찌질하게 차이던 ‘흑역사’를 지닌 바라노프에게, 어느덧 미디어 조작에 완벽하게 능한, 그야말로 한 국가의 권력 승계(옐친에서 푸틴으로)를 담당할 막대한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바라노프는 “난 연기자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푸틴을 만나 “이제 당신의 업무는 ‘시크릿 서비스’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게 러시아를 위한 길”이라고 조언합니다.

‘바라노프는 자신의 과업을 달성해 ’21세기의 라스푸틴‘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바딤 바라노프를 연기한 배우 폴 다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에서 주연을 맡았던 바로 그 배우입니다. [베네치아영화제]

이 영화는 현대의 러시아사(史)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모든 권력은 비이성적이며, 그 권력은 조작에 기반한다’는 통찰을 건네주기 때문입니다.

체첸 전쟁, 쿠르스크 잠수함 침몰, 크림반도 병합 등 여러 사건들이 차례로 언급되는데 이 과정에서 푸틴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푸틴이 권력을 잡는 과정’을 그렸다기보다는 ‘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이 영화는 외신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지만 주드 로의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이 없습니다. 주드 로는 푸틴을 ‘완벽’에 가깝게 연기합니다. 입꼬리를 전혀 올리지 않는 포커 페이스, 잠시 웃더라도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기이한 표정의 미소, 살짝 은빛에 가까운 회색의 단정한 헤어 스타일 등 배우 주드 로의 모습은 그 자체로 ‘차르’ 푸틴과 같았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저 인물이 주드 로가 맞는가’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핵심 주인공인 바라노프는 배우 폴 다노가 연기했습니다. 영화 ‘파벨만스’의 주인공이었던 그 배우입니다.

‘크렘린의 마법사’를 연출한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31일(현지시간) 베네치아영화제에 등장한 모습. 그는 ‘이마 베프’ ‘퍼스널 쇼퍼’ ‘논-픽션’ 등을 연출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연출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애정합니다. [EPA·연합뉴스]

‘크렘린의 마법사’는 연극 연출가이자 TV 프로그램 감독이었던 한 인물이 권력의 최정점을 ‘만들어내는’ 서사이지만, 단지 그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권력 조작’이란 하품 나오는 주제를 다룬 영화로만 이 영화를 이해하기엔 그 해석 역시 협소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우리가 한 대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이미지’에는 누군가의 ‘의도’가 서려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은 실재가 아닌 ‘허상’일 수 있으며, 그 허상에 조종당하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크렘린의 마법사’는 7일 새벽(한국시간) 열리는 폐막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을까요.

3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도섬 베네치아영화제 ‘크렘린의 마법사’ 상영을 앞두고 살라 그란데 극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오전 가장 빠른 타임에도 불구하고아사야스 감독의 신작을 확인하려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김유태 기자]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 상영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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