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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임영웅의 결단, K팝 음반 시장에 던진 화두

이데일리 윤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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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임영웅의 결단, K팝 음반 시장에 던진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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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가수 임영웅이 결단을 내렸다. 정규 2집 ‘아임 히어로2’를 더 이상 활용도가 떨어지는 CD 대신, 무려 144페이지 분량의 포토북 형태로만 발매하기로 한 것이다. 싱글도 아닌 정규앨범을 CD 없이 포토북 형태로만 발매한 그의 선택은 단순한 발매 전략을 넘어 팬들의 소비 패턴과 음악 산업의 구조를 함께 고민한 행보다. 불필요한 ‘앨범 쓰레기’를 양산하지 않고, 팬들에게 실속 있는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임영웅(사진=물고기뮤직)

임영웅(사진=물고기뮤직)


사실 K팝 시장에서 CD는 더 이상 음악을 듣기 위한 매체가 아니다. 스트리밍이 일상화한 지금, CD는 ‘수집용 굿즈’이자 팬덤 충성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기능해왔다. 가요기획사는 초동 판매량(발매 후 일주일간의 판매 집계)을 경쟁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수십 종의 포토카드와 버전 차별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팬들은 음악 감상이 아닌 포토카드 수집과 팬 사인회를 위해 수십 장, 수백 장 앨범을 구매했다.

국내 음반 집계 사이트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실물 앨범 판매량은 전년대비 약 19% 줄어든 9300만 장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도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하이브, JYP, SM, YG 등 가요기획사 4사의 실적을 보면 굿즈와 공연, 플랫폼 매출은 꾸준히 상승세다. 4개사 모두 콘서트·MD 부문 매출 비중이 커지며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CD 판매량 중심의 성장 공식이 더는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시점에 임영웅의 포토북 선택은 음악 산업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팬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팬들에게 불필요한 소비를 강요하지 않고, 대신 소장 가치를 높인 실속 있는 형태를 제시했다. 또한 음반 제작과 폐기로 인한 환경적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ESG 차원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단순히 환경을 위한 제스처를 넘어, 아티스트와 팬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 셈이다.

더 나아가 임영웅의 결정은 산업적 구조에도 화두를 던진다. 지금까지 앨범 판매량은 가수의 위상과 성적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이었다. 그러나 판매량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단순한 수치 경쟁이 아티스트의 가치를 정의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임영웅은 ‘음악은 디지털로 즐기고, 실물은 굿즈로 남긴다’는 새로운 해법을 내놓음으로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발했다.

앞으로 관건은 다른 아티스트와 기획사들이 이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임영웅의 방식이 대중적 성공을 거둔다면 실물 앨범 시장은 점차 포토북·굿즈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음악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소비하고, 실물은 ‘경험과 추억’을 담은 형태로 제공하는 양분화 구조가 자리잡을 수 있다.

임영웅의 이번 선택은 단순한 발매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팬과 환경을 함께 고려한 아티스트의 철학적 결단이며, K팝 산업이 스스로 돌아봐야 할 질문이다. ‘초동 신화’라는 수치 경쟁에서 벗어나, 팬과 아티스트가 더 건강하게 공존하는 길. 어쩌면 임영웅은 이미 그 미래를 향해 한 발 앞서 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