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이란 대통령 지하 벙커에 날아든 폭탄 6발…단초는 경호원 휴대폰

조선일보 이철민 기자
원문보기

이란 대통령 지하 벙커에 날아든 폭탄 6발…단초는 경호원 휴대폰

서울맑음 / -3.9 °
6월16일 이스라엘 공습에, 이란 대통령은 빛 들어오는 구멍으로 맨손 탈출
단 한 번의 실수…일부 경호원이 보안 어기고 휴대폰 소지하고 회의실 밖 대기
핵심 인사들은 휴대폰 사용 안 해도, 경호원들이 휴대폰 소지ㆍ소셜미디어 게재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이 시작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인 6월16일 수도 테헤란 서쪽의 한 산비탈 지하 약 30m 벙커에서 이란의 최고국가안보위원회(SNSC)가 극비리에 열렸다. 이미 이스라엘의 맹폭(猛爆)으로 이란 전역의 주요 군기지와 관청, 핵시설이 파괴됐고, 군 수뇌부와 주요 핵과학자 10여 명이 살해된 시점이었다.

이날의 지하벙커 참석자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대법원장, 내무ㆍ국방ㆍ정보부 장관, 전임자들이 죽은 뒤 새로 임명된 주요 군 지휘관들이었다. 모든 것은 극비(極秘)였고, 참석자들은 각자의 차량으로 도착했다. 이스라엘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어느 누구도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았다.

6월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학생 시민 시위에 참석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그는 1주일 전 자신이 주재한 지하 30m 벙커 회의실에 떨어진 이스라엘의 폭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AP

6월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학생 시민 시위에 참석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그는 1주일 전 자신이 주재한 지하 30m 벙커 회의실에 떨어진 이스라엘의 폭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AP


그러나 회의 시작 후 얼마 안 돼,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벙커 입구와 출구 두 곳에 6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벙커 회의실은 잔해와 연기, 먼지로 가득 찼고 전기도 나갔다.

이후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고위성직자회의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작은 구멍 하나로 빛과 공기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질식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했다. 그는 맨손으로 잔해를 파내 한 명씩 기어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페제시키안은 다리에 파편을 맞았고, 내무 장관은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벙커 밖에는 경호원들의 시신 몇 구가 널려 있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들 수뇌부가 대동한 경호원들의 휴대폰을 추적해, 회의장소를 파악했다. 경호원들은 최고 요인들을 현장까지 수행했고, 벙커 회의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경호원들을 추적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려졌다”며, “이는 이란의 가장 두터운 보안ㆍ정보 방어막을 뚫으려는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작전 중 일부였다. 이란의 보안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양국 첩보전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우위에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이란 정보당국이 이스라엘의 휴대폰 추적 능력을 몰랐던 것도 아니다. 이란 정부는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이 고위 군 지휘관과 핵 과학자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동선(動線)을 추적하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작년 9월 중순,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이 들고 있던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pager)에 폭탄을 설치해 폭발시킨 이래, 이란은 고위 군 지휘관과 정부 관리, 주요 핵과학자들에게 스마트폰ㆍ소셜미디어ㆍ메신저 사용을 금지했다.

또 이번 이스라엘ㆍ이란 간 ‘12일 전쟁(6월12일~6월24일)’ 첫날에 10여 명의 군 지휘관과 핵심 핵과학자들이 살해되면서, 경호원들에게까지 휴대폰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 강화된 보안 규칙에도, 누군가가 이를 어기고 최고국가안보위원회 회의실에 휴대폰을 들여왔고, 이스라엘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NYT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관리와 전문가 10여 명을 인터뷰해 “이란 경호원들이 부주의하게 휴대폰을 사용하고 심지어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것들은, 이스라엘 군 정보당국이 이란의 핵 과학자와 군 지휘관들을 추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전(前) 정부에서 전략 담당 주요 직책을 맡았던 테헤란대 정치분석가인 사산 카리미는 “고위 관리들과 지휘관들은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 않았지만, 경호원들과 운전 기사들은 보안 조치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휴대폰을 사용해 대부분 추적당했다”고 NYT에 말했다.

이스라엘은 요인들의 경호원들뿐 아니라, 이란 전역에 첩자와 공작원들을 심고 첨단 기술로 주요 인사들을 제거해왔다. 모스타파 하셰미 타바 전 부통령은 6월 말 이란 매체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침투는 우리 의사결정 과정의 최고위층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란은 지난달 3일 주요 핵과학자인 루즈베흐 바디를 스파이 혐의로 처형했고, 수십 명의 군ㆍ정부 관리를 체포하거나 가택연금시켰다. 바디는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의 다른 핵과학자 2명을 살해하는 데 도움을 준 혐의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이란혁명수비대의 새 사령관이 된 아흐마드 바히디 준장은 이란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국내에 첩자와 공작원을 심어뒀을 뿐 아니라 “기술ㆍ위성ㆍ전자 정보에서 대다수의 첩보를 얻어 사람들을 찾아내고, 정보와 음성, 영상을 확보하며, 정밀한 위성으로 확대해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 초기에 주요 핵과학자ㆍ군 지휘관 수십 명 제거 2개 작전 동시 수행

NYT는 “이스라엘이 2022년 말부터 이란의 핵 과학자들을 추적해 왔으며, 이들을 암살하는 ‘참수(斬首)팀’을 꾸려서 작년 10월부터 실행하려고 했지만 당시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충돌을 우려해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2018년 이스라엘의 해외첩보기관 모사드가 이란에서 탈취한 다량의 핵관련 자료를 토대로 100명으로 제거 대상 명단을 추렸고, 최종적으로 12일 전쟁을 전후해서 13명을 암살했다.

이스라엘은 핵시설의 오(誤)작동을 유발하는 사보타주나 파괴 작전으로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지연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소수의 핵심 이란 과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매우 기술적 난제(難題)인 핵기폭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결국 이 과학자 그룹을 제거하는 ‘나니아 작전(Operation Narnia)’을 세웠다. 이들은 ‘12일 전쟁’ 초에 집중적으로 암살됐다.

이스라엘은 또 ‘레드 웨딩 작전(Operation Red Wedding)’을 통해 이란의 고위 군 지휘관들을 제거하는 역량을 구축했다. ‘레드 웨딩’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s of Thrones)’에서 결혼식장에서 발생한 기습적이고 잔혹한 대량 학살 사건이다.

‘레드 웨딩’의 첫번째 타깃은 이란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이란혁명수비대 항공우주군 사령관인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준장이었다. 하지자데는 6월13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지하 회의소에서 고위 지휘관 20여 명, 핵과학자 6명과 함께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두 작전에서 핵심 인물들을 초기에 동시 타격했다. 이후에는 이란의 경계심이 커져 제거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6월16일 테헤란 지하 30m 벙커에서 최고국가안보위원회가 열렸을 때는, 이미 이스라엘이 이란의 최고 핵과학자인 모하마드 므헤디 테흐란치와 페레이둔 압바시를 제거한 뒤였다.

◇경호원을 대폭 강화한 게 오히려 이스라엘에 도움돼

전쟁 초기에 수십 명이 살해되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대규모 경호 인력을 배치하고 휴대전화ㆍ메신저 사용을 금하는 강력한 보안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스라엘 정보당국에 도움이 됐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경호원들이 여전히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게시물까지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스라엘의 한 국방 관계자는 “이란이 그렇게 많은 경호원을 동원하게 된 것이야말로 우리가 유도한 적의 약점이 됐고, 우리는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NYT에 말했다.

이란 정보부 장관은 지난 달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고위 관리 23명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름이나 직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 ‘12일 전쟁’ 수개월 전에도, 이스라엘이 35명을 암살하려는13건의 음모를 발견해 무산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 관계자는 6월 12일의 기습 공습 전에 이란을 긴장케 하는 작전을 실행한 사실은 없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

[이철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