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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특검 “통일교, 대선 직전 尹과 펜스 전 美 부통령 만남 주선해 미국 지지 모습 연출”

조선일보 이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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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특검 “통일교, 대선 직전 尹과 펜스 전 美 부통령 만남 주선해 미국 지지 모습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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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윤영호 전 본부장, 권성동·건진 투트랙으로 청탁“
김건희 여사, 2023년 당대표 선거 앞두고 통일교 지원 요청 정황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면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을 면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뉴스1


통일교 측이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의 만남을 주선해 윤 후보의 당선을 도운 정황을 특검이 확보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통일교가 이 만남을 주선하면서 미국이 윤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당선에 기여했다는 얘기다.

◇특검 “통일교, 美가 尹 지지하는 듯한 모습 연출”

특검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씨의 공소장을 살펴보면, 윤씨와 한학자 통일교 총재 등 통일교 고위 간부들은 2022년 2월 13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한반도 평화서밋’ 행사를 열었다. 윤 후보는 이 행사에 참석해 펜스 전 부통령과 1시간가량 면담을 가졌는데, 특검은 윤씨와 한 총재가 이 면담을 주선하면서 미국이 윤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당시 윤 후보는 면담 이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한 우리 안보와 한미 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이어 한 총재는 같은 해 3월 2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참부모님 특별집회’를 열어 윤 후보 지지 의사를 통일교 고위 간부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통일교가 윤씨를 필두로 윤 후보 측에 접촉한 것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검은 윤씨가 2021년 12월 29일과 2022년 1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면서 “통일교 행사에 윤 후보가 참석해 한 총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윤석열 정권이 통일교의 정책, 프로젝트, 행사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등 지원해주면, 통일교 신도들의 조직적인 투표 및 통일교의 물적 자원을 이용해 윤 후보의 대선을 도와주겠다”고 말한 정황을 공소장에 담았다.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세계일보 부회장이던 윤모씨라고 한다.

두 번째 만남이 있던 날 윤씨는 한 총재의 승인을 받아 현금 1억원을 권 의원에게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한 총재가 ‘신아프리카 안착을 위한 각종 행사’를 비롯해 ‘제5유엔 사무국 한국 유치’, ‘캄보디아 메콩피스파크 사업’, ‘아프리카 한일 해저터널’, ‘DMZ 평화공원 설치’ 등 주요 현안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후보 측에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선명 전 총재가 2012년 별세한 뒤 후계 구도 문제로 내분을 겪던 한 총재가 통일교 영향력을 확대해 내부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권 의원은 1억원을 받은 뒤 한 달여가 지난 2월 8일 경기 가평군에 있는 통일교 천정궁을 찾아 한 총재를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엔 윤씨와 통일교 2인자로 불린 정원주 전 천무원 부원장도 배석했다. 한 총재는 이 자리에서 윤 후보를 돕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권 의원은 감사를 표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 “윤영호, 권성동·건진 투트랙 구축”

특검은 윤씨가 권 의원을 통해 윤 후보 접촉 루트를 열어둔 상황에서, 대선 이후엔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도 접근하는 등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본다. 윤씨는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4일 통일교 산하 재단의 임원을 맡고 있던 이모씨를 통해 전씨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달 23일 전씨를 만났다고 한다.

일주일 뒤 윤씨는 김 여사로부터 “전(성배) 고문이 전화를 주라고 했다”며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 총재님은 건강하시냐.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통화를 계기로 윤씨는 전씨가 김 여사 및 ‘윤핵관’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얘기다. 특검은 윤씨가 이후 전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1000만원 안팎의 샤넬 백 2개와 6220만원 상당의 그라프 목걸이를 건네는 등 친분을 형성했다고 본다.

특검은 김 여사가 전씨를 통해 윤씨에게 통일교 교인을 국민의힘에 가입시켜달라고 요청한 정황도 윤씨 공소장에 담았다. 2023년 3월 8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예정돼 있었는데, 이를 앞두고 특정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통일교 신도들의 지원을 김 여사가 먼저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 총재는 지원을 승인했고, 통일교가 실제로 윤 전 대통령과 측근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도왔다고 특검은 본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서 조사를 마친 김건희 여사가 걸어나오고 있다./조선DB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서 조사를 마친 김건희 여사가 걸어나오고 있다./조선DB


윤씨는 전씨를 통해 김 여사와의 소통 창구를 구축하면서도 권 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권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인 2022년 3월 22일 오전 천정궁을 찾아 한 총재를 만났고, 한 총재는 윤 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후 권 의원은 윤씨를 데리고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윤 전 대통령 당선인 사무실로 이동했고, 윤씨와 윤 전 대통령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윤씨에게 “한 총재에게 대선을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달라”고 말했고, 윤씨는 통일교 프로젝트인 제5유엔사무국 설치 및 아프리카 행사 비용을 국가 ODA 방식으로 활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윤 전 대통령이 “그와 같은 사항들을 논의하여 재임 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자”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두 달 뒤 열린 통일교 행사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암묵적 동의를 받았다”며 이 같은 내용을 신도들에게 연설했다고 한다.

특검은 외교부가 2022년 3월 30일 국정과제 이행 계획서에 아프리카 ODA 2배 증액을 목표로 한 신정부의 아프리카 외교 비전 발표 계획을 담은 점,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ODA 규모를 2030년까지 1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점 등을 들어 윤 전 대통령에게 청탁이 실제로 전달됐다고 본다.


◇權, 통일교 측에 ‘한학자 원정도박 수사’ 유출 정황

한편 특검은 권 의원이 윤씨에게 경찰의 ‘한학자 원정도박’ 수사 정보를 유출한 정황도 공소장에 담았다. 춘천경찰서는 2022년 6월 통일교 내부자로부터 한 총재 등 통일교 임원이 재단 자금을 횡령한 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원정도박을 한다는 제보와 관련 자료를 받았고, 한 총재 등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및 특가법상 횡령 혐의에 대한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권 의원이 그해 10월 윤씨에게 갑작스레 연락해 “한 총재님이 카지노 하시냐” “경찰 쪽 찌라시인데 통일교 총재 한학자 등 통일교 임원들이 불법 도박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해당 사건으로 통일교에 대한 압수 수색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2013, 2014년 자금 출처가 문제가 된다”는 등 내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한 총재와 정 전 부원장에게 이를 그대로 보고했고, 두 사람은 윤씨에게 압수 수색에 대비해 자금 관련 자료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씨는 통일교 재무국과 총무국 직원들에게 사무실 컴퓨터를 포맷하라고 지시하고, 도박 자금 출처를 입증할 증거인 회계 프로그램에 저장된 정보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씨에겐 증거인멸 혐의도 적용됐다. 윤씨의 첫 재판은 오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우인성) 심리로 열린다.

한편 통일교는 이날 입장을 내고 “한 총재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말씀한 적도 없고, 부정한 자금 거래나 청탁, 선물 제공을 승인한 적도 없다”며 “가정연합(통일교) 고위 간부를 지내며 개인적 일탈행위를 했던 특정 인물의 허위 주장과 근거 없는 추정에 기초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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