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연방 선거 투표시 신분증 지참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선거 제도 전반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유권자 신분증은 모든 투표에서 필수다. 예외는 없다. 이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해당 명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환자나 해외 파병 군인을 제외하고는 우편투표를 제한하겠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으며, 투표 기계 사용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미국 헌법은 선거 관리와 규칙 제정에 관한 권한을 각 주에 위임하고 있다. 연방 차원의 개입은 의회만 법률 제정을 통해 가능하다. 대통령에게는 선거에 관한 명시적 권한이 없다. 행정명령을 내린다 해도 즉각적인 법적 대응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전국 단위의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국가에서 일괄 발급하는 신분증이 없다. 신분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정부 발급 신분증 없이 지내기도 한다. 운전면허증이 가장 일반적인 신분증이지만, 도시 외곽이나 저소득층은 운전하지 않아 면허증이 없는 경우가 많다. 투표 과정에서 신분증 지참을 의무화하면 주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전반에 영향을 미치려는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전면 폐지를 위한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며, 해당 조치를 통해 “2026년 선거의 정직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우편투표가 부정 선거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로 입증된 바 없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워싱턴 디시(D.C.)와 14개 주에서 우편투표율이 30%를 넘었으며, 이 중 절반은 트럼프가 승리한 주였다. 특히 유타주는 전체 투표의 91.5%가 우편으로 이뤄졌고, 공화당이 선거를 관리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선거 유권자 등록 시 미국 시민권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지만, 이 명령은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았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 데니스 제이 캐스퍼 판사는 해당 명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섰으며, 일부 유권자의 선거권을 박탈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는 “헌법은 대통령에게 선거 관련 구체적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여권이 없는 1억 4600만명의 미국 시민은 물론, 출생증명서를 갖기 어려운 사람, 결혼으로 이름이 변경된 여성 등 수백만 명이 투표 자격을 잃을 수 있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현재 미국 36개 주는 투표소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거나 요청하고 있으며, 나머지 주와 워싱턴 디시(D.C.)는 공공요금 영수증, 임대 계약서, 은행 명세서 등을 통해 주소와 이름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거나, 합법적인 유권자임을 맹세하는 진술서를 작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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