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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 56명이 해외로 떠나버린 이유 [신기욱의 글로벌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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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 56명이 해외로 떠나버린 이유 [신기욱의 글로벌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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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한국 사회에 드리우는 인재 유출 그림자
중국 등 경쟁국 인재 확보에 손 놓은 한국
대응 못 하면, '피크 코리아' 가속화 우려


서울대 정문 전경. 서울대 제공

서울대 정문 전경. 서울대 제공


요즘 '브레인 드레인(인재 유출)'이 또다시 사회·정책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상의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만 명당 인공지능(AI) 인재 유출입(-0.3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글로벌 경제'에서 발표한 2024년 관련 순위에서도 175개국 중 36위로 다른 선진국 대비 인재 유출이 심각했다.

브레인 드레인은 새로운 이슈도,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은 한국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과거엔 젊은이들이 유학을 갔다가 귀국하지 않아 생긴 것이 대부분이고,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자리 잡은 고학력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이들이 다시 귀국해 일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자신들의 능력을 알아주고 걸맞은 보상을 해 주는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글로벌 인재시장에는 경쟁력 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열려있다. 굳이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다. 특히 이공계 인재는 해외 대학이나 기업에서의 수요가 많아 더 나은 조건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삶의 질, 특히 자녀 교육문제다. 과거처럼 자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일에만 집중하는 문화는 사라지고, 일과 삶의 질 사이의 균형이 중요해졌다. 실리콘밸리에 대기업 주재원으로 나온 고참 부장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임원이 되는 것을 마다하고 미국 회사로 이직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새로운 브레인 드레인이 심각한 건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위기와 겹쳐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스탠퍼드대 출판사에서 출간한 'The Four Talent Giants'라는 책에서 논했듯이 일본, 호주, 중국, 인도 모두 필사적으로 다양한 인재 유치와 활용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은 2035년까지 전략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세계 최고(한국 포함) 인재 유치를 비롯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수준의 연구·작업 환경과 보상체계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 대학과 기업의 연구시설이나 보상이 해외와 비교하면 턱없이 열악한데,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인재가 왜 국내에 남겠는가.

더 나아가 필요한 분야별로 고급 인재를 충원해 부족한 인력을 보충해야 한다. AI 등 첨단 분야는 국내 인재만으로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며, 폭넓게 글로벌 인재시장을 활용해야 한다. 늦기 전에 '인구·인적자원부'를 신설하여 국내외적으로 가용한 인적자원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 우수 인재 확보와 유치 없이 ‘AI 3대 강국’을 만든다는 건 어림없는 소리다.


글로벌 인재 전쟁은 치열하며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연구개발비 대폭 확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대를 10개 만드는 것과 서울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글로벌 대학 1개를 만드는 것 중 한국의 미래를 위해 뭐가 더 중요할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4년간 56명의 서울대 교수가 해외로 이직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잠시 한눈을 파는 순간 ‘피크 코리아’의 하산길은 더욱 가파르고 험난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