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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안 남기려… 평생 써온 물건 ‘당근’에 파는 7080 [핫코너]

조선일보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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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 안 남기려… 평생 써온 물건 ‘당근’에 파는 7080 [핫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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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도움 받아 거래
“자식에게 짐 치우게 하기 싫어”
일러스트=김성규

일러스트=김성규


‘꽃무늬 나무 서랍장 7만원, 일본 다기 세트 5만원, 성인용 기저귀 위생 매트 3장 1만8000원….’

작년 남편이 별세해 서울 동대문구 집에 혼자 살고 있는 김모(78)씨가 중고 거래 앱 당근에 올려둔 매물 목록이다. 몇 년째 투병 중인 파킨슨병이 깊어져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을 떠나려고 보니 집안 살림이 마음에 걸렸다. 김씨는 “집에 남은 물건들은 유품(遺品)이 될 텐데 자식들이 괜히 짐 치우느라 애쓰도록 하기 싫었다”며 “요양원이든 하늘나라든 가기 전에 내 손으로 3만원이라도 벌어 자식·손주들에게 남겨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들이 평생 써온 물건들을 미리 처분하는 7080 노년층이 늘고 있다. 본지가 만난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짐 치우는 ‘짐’까지 남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중고 사이트나 수거 업체 등에선 ‘생전 유품 정리’란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유품은 원래 고인(故人)이 남긴 물건이지만, 요양원 입소가 보편화하면서 물건을 미리미리 처분한다는 취지다. 작년 전국 노인 주거·의료 복지 시설 입소 정원은 약 27만명으로 5년 새 27% 증가했다.

수도권의 한 수거 업체 대표는 “요양병원 입소 날짜가 잡혔으니 집 안을 치워달라는 연락을 최근 몇 년 새 부쩍 자주 받고 있다”며 “평생 쓴 가구와 가전이 10만원도 안 되는 헐값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노인이 많다”고 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중고 거래를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진모(71)씨도 요양원 입소를 앞두고 물건을 정리 중이다. 진씨는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두면 요양보호사가 집에 왔을 때 한 번에 매물 등록을 해준다”며 “조금만 더 연습하면 나 혼자서도 물건을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자녀는 부모 부탁에 따라 대신 물건을 처분하기도 한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58)씨는 강동구 본가에 갈 때마다 작년 초 요양원에 들어간 어머니(79)의 살림을 처분 중이다. 너무 낡은 가구들은 버리고 제습기, 공기 청정기 등 쓸 만한 가전제품들은 팔고 있다. 이씨는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은 팔기 쉬운데 엄마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정말 못 팔겠다”고 했다.


유품 정리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는 김석중씨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맞은 일본에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가 발달해 50·60대부터 유품을 정리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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