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찾은 시민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
양미 | 작가·‘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무기력을 부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더위로 머리는 멍하다. 그냥 이대로 선풍기 앞에 가만히 있고 싶지만, 그래, ‘일은 안 할 수 없으니까 일’이지.
마당밭 일은 새벽 6시, 눈 뜨면 바로. 한시간만. 저녁은 모기밭이니 피하자. 한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어느덧 아침 8시. 마당은 벌써 뜨겁다. 안으로 도망. 커피를 내리고 시사 라디오를 들으며 업사이클링 바느질이나 삼베실로 뜨개질. 자료 조사와 책 읽기. 그러다 쓰기.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귀찮다. 어제 구운 빵과 올해의 딸기잼으로 해결. 두부라도 한모 사 올까? 버스정류소까지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10분이나 걸어서 왕복 1~3시간을 써야 하니 패스. 저녁엔 그날 뉴스를 시청하며 다시 바느질이나 뜨개질.
계곡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지만 누군가의 쉼과 휴식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휴가라곤 없는 살림 노동과 나와서도 일만 하는 ‘어머니들, 아내들, 며느리들, 딸들’이 자꾸만 보인다. 집, 일터, 휴가지 그가 있는 곳이 어디든 ‘일’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휴가철에 일하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말이 아니다. 내 관심은 ‘일에 의무와 책임만 있고 결정권이 없는’ 문제다. 자본주의 생태계는 남을 위해 일하고 번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산다. 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돈을 버는 시간 내내 결정은 노동자의 몫이 아니다.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야만 한다. 설사 죽을 수도 있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임금노동자가 아닌 나는 내 노동과 휴식에 대한 자유와 의무를 스스로 결정한다. 아니다. 모든 일엔 마감이 있으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내용과 방식이다. 대신 내 마음이나 가치관을 배신하지 않는.
오랜만에 진안읍에서 지인을 만났다.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더니 계곡에서 안전요원으로 알바를 한단다. 남들 노는 곳에서 일하니 어떠냐고 물었다. 힘들진 않고 심심하고 지루한 일이라고 했다. 고된 임금노동만 아는 나는 그런 일자리면 인기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란다. 모집은 군에서 하고, 계곡에 구간마다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올해는 중앙정부의 안전과 재난 예방 강조에 따라 두배 더 많은 ‘인력’을 뽑았다. 노동조건이 궁금했다.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쉬는 시간은 보장되는지, 밥은 누구랑 먹는지. 그는 다 그럭저럭 괜찮은데 지루한 게 제일 문제라고 했다. 그러니까 하루 8시간을 어디 가지 말고 사람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와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어야 한다. 내내 혼자서 말이다. 그가 덧붙인다. 사실 인기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했다. 사고 발생 시 안전요원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며칠 후 아침에 듣는 시사 라디오에서 같은 문제를 다뤘다. 한 지자체에서 안전요원에게 사고가 나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도록 했다는 내용이었다.
계곡이라는 공유 공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주민들이 함께 지는 방법은 없을까? 주민들이 정한 일정과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을 텐데. 이익도 주민들이 직접 가져갈 수 있고. 그는 사실 계곡을 지역 주민들이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군에서는 외부용역을 선택했다. 그 이유가 황당했다. “그래야 관리가 편하거든요. 공무원은. 주민들 하고 의논하는 거 피곤해서 싫어해요.” 주민들의 자치와 자립보다 자신의 편의가 더 중요하다면 그는 왜 공무원이어야 할까?
아무튼 안전요원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항상 그랬다. 결정은 위에서, 책임은 아래의 노동자가. 그러다가 노동자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내쫓겼다. 임금노동자도 자기 일에 대한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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