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나 지갤러리 개인전
조각·설치·드로잉 10여점
조각·설치·드로잉 10여점
우한나 ‘걸어가는 디바’(2025). 지갤러리 |
거대한 꽃이 걸어간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치장을 한 채, 힘겹지만 꿋꿋하게 걸어간다. 그 모습은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동시에 기괴하다. 우한나 작가는 여성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으며 걸어가는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 이런 치장이 어떤 면에선 자멸적이라고 느꼈다. 이를 꽃에 빗대어 형상화한 대형 설치작 ‘걸어가는 디바’(2025)는 그가 줄곧 탐구해온 양가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한나 작가의 개인전 ‘품새’가 오는 9월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으로 조각과 설치, 드로잉을 아우르는 주요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품새’는 한국 전통 무술에서 몸의 균형과 중심을 잡는 자세를 의미하는 동시에 작가의 예술적인 태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작가는 생성과 파괴, 균형과 붕괴 등 일상에서 발견되는 양가적인 특성을 가상 생명체들의 품새를 통해 시각화했다. 이들은 꽃과 인체, 동물 등 자연에서 받은 영감으로 탄생했지만 실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물인지, 식물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작품의 주요 오브제로 등장하는 꽃 역시 흔히 접하는 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색상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렬하고 꽃잎을 뒤틀거나 펼친 형상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 같은 느낌을 준다. 공격적이면서도 자기 파괴적이고,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모습이다.
우 작가는 “누구나 내면에 (자기 방어적인) 공격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독을 품은 꽃을 떠올리게 됐다. 상대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치명적인 독을 쏘는, 최상위 포식자가 된 꽃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작업했다”며 “원래 독기를 품으면 자기 몸에도 이상 반응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굉장히 공격적인 에너지를 갖고 뭔가를 하고 있는 순간이지만 사실 그 순간은 자기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공격성을 다 드러내면서 자멸하는, 사람의 가장 취약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우한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지갤러리 전경. 지갤러리 |
우한나 ‘드미프앙’(2025). 지갤러리 |
사람의 다리 골격을 연상시키는 ‘드미프앙’(2025)은 평소 발레를 배우는 작가가 온몸의 균형을 요구하는 발레의 기본 동작인 드미프앙(발 끝을 완전히 세워서 서 있는 자세)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발끝으로 중심을 잡을 때마다 발목부터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힘이 들어가면서 정말 아슬아슬한데 어느 순간 균형을 잡게 되는 게 신기했다”며 “신체 감각으로 느끼는 불안함과 그 불안함 안에서 안정을 찾는 순간들을 표현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상 생명체들의 찰나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결국 생명력이다. 때로는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몸짓은 불안과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맞닿아 있다.
본래 전시장 바닥에 있던 갈라진 틈까지 작품의 일부로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우 작가는 꽃이 마치 피를 흘리듯 축 늘어진 꽃잎 아래로 색색의 액체가 바닥의 틈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균열은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자극을 받아서 계속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제 작업을 보이는 데 굉장히 적절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며 “핏줄이나 물줄기로 볼 수도 있고, 나무가 땅에 내린 뿌리로 볼 수도 있다. 에너지는 어디로든 흐르고 그 흐름은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과 예술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2023년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eize)’가 신진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의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 런던의 전시 공간인 ‘프리즈 No.9 코크 스트릿(Cork Street)’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국내에서는 송은아트큐브(2020)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우한나 작가. 지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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