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 인터뷰]
러시아 밀착했던 北
소홀했던 中 관계 관리 위해 방중 결정
한미일 맞서 북중러 강화
김정은, 다자 무대 데뷔 의미도
대외 활동 본격화하며 트럼프도 만날듯
러시아 밀착했던 北
소홀했던 中 관계 관리 위해 방중 결정
한미일 맞서 북중러 강화
김정은, 다자 무대 데뷔 의미도
대외 활동 본격화하며 트럼프도 만날듯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달 3일 중국 전승절에 참석한다고 중국 외교부가 28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방중이 성사된다면 김정은의 첫 다자 외교 참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러 관계에 집중해온 김정은이 이번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대외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도 커졌다는 관측도 나왔다.
앞서 중국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전승절 참석을 고민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우원식 의장 참석 결정을 번복하고 직접 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전문가들은 미국과 신뢰를 위해 기존 결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해외 30여 곳의 특임 공관장들을 후임도 정해놓지 않고 급히 귀국 조치해 ‘김정은 전격 방중’ 같은 긴급 상황에서 주중 한국 대사가 두 달 가까이 공석인 것은 뼈아픈 점으로지적된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제45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 |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간의 균형 외교로 대내외 영향력을 극대화해왔다”면서 “하지만 최근 러시아 파병으로 북러 동맹 조약까지 맺으면서 북중 관계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미국 중재로 진행 중인 만큼, 북한으로서는 대중 관계를 회복해 중국의 경제·외교적 지원도 얻어내며 대외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중국 전승절은 1945년 9월 3일 중국이 일본 항복 문서를 받은 직후부터 기념됐지만 지금같이 각국 정상이 참석하는 대규모 공식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2014년부터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2014년 당시 김정은은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3년상을 치르고 있어 전승절에 못 갔고, 그 이후에도 집권 초라서 여의치 않아 최룡해 당 비서를 대신 보냈다”면서 “김정은은 이번 첫 참석으로 한미일에 대응하는 북중러 관계를 공고히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간 대남 비방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직 국정원 차장은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당선됐을 때부터 그를 날릴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면서 “이번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대외 활동을 넓혀가면서 트럼프 행정부 측과 물밑 접촉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파병으로 군사·경제적 이득을 챙기며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이 이번 전승절에서 북중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정상 국가의 지도자로서 발돋움하려는 의도도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김정은이 직접 오는 10월 말~11월 초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하진 않겠지만, APEC 때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면 판문점이나 원산에서 깜짝 회동을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면서 “김정은과 연내 만나고 싶다”면서 APEC 계기 미북 및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피스메이커, 나는 페이스메이커”라며 말하는 등 대북 대화 재개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국정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날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전승절에 참석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국회의장을 대신 보내는 결정을 번복하고 대통령이 직접 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신범철(왼쪽부터) 전 국방부 차관, 주재우 경희대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본사 편집국에서 한미 정상회담 의미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
신범철 연구위원은 “대통령실이 이와 관련해 검토하겠겠지만, 기존 결정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이재명 정부 입장에선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이 대통령이 전승절에 참석하는 게 맞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깨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당초 이 대통령이 중국 정부로부터 전승절 초청을 받을 때도 ‘한미 동맹 우선’ 정책에 기반해 ‘국회의장 대참’ 결정을 내렸던 만큼, 그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 대미 외교 관리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전승절에 참석한다고 한국 대통령이 계획을 급히 바꾸는 것도 국가 위신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 위원은 “이번엔 우 의장이 계획대로 전승절에 참석하고 이후 외교부, 통일부, 정보 당국 등을 여러 채널을 통해 대북 접촉을 시도하고 미국과 협의점을 찾아가면 될 것”이라고 했다.
5년 전인 2020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에서 당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가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의 영접을 받는 모습. /중국 CCTV |
전직 국정원장은 “자칫 이 대통령이 급히 전승절에 간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 김정은을 따로 만나지도 못하고 오히려 외면을 당해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면서 “여유를 갖고 이번 전승절 진행 상황 등 판을 읽으며 향후 대응책을 마련해 대북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재우 교수도 “김정은은 이번 전승절 참석을 통해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고도 할 것”이라면서 “이 대통령은 김정은 참석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지금은 한반도 안팎의 형세를 읽고 침착히 관찰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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