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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도 실버마크 달라" 버티던 트위터, 용산 요구 후 규정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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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도 실버마크 달라" 버티던 트위터, 용산 요구 후 규정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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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민원 후 자격 기준에 '배우자' 명시
트위터, 문체부·외교부 문의 땐 "불가" 입장
특검, '규정 사후 수정' '공무원 동원' 등 조사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광화문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광화문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위터(현 엑스·X)가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실 요구에 따라 정부 인사에게 주어지는 계정 인증 마크를 김건희 여사에게 부여하고, 이후 공적 지위가 없는 영부인에게도 인증 마크를 부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압박으로 내부 규정에 반하는 결정을 한 뒤 사후적으로 규정을 손본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다. 대통령실은 '자격 기준에 맞지 않다'며 버티던 트위터 측을 설득하려고 정부 부처들을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트위터를 압박하고 공무원들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없었는지 규명하기 위해 특검 수사 필요성이 제기된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트위터는 2023년 7월 엑스로 사명을 변경한 뒤 '실버마크'(회색 체크마크) 자격 기준에 '대통령의 배우자'도 추가되도록 내부 규정을 변경했다. 실버마크는 정부와 국제 다자 기구에 주어지는 인증 표식이다. 해당 기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개인 계정에도 마크를 부여할 수 있다.

2023년 트위터 규정상으로는 '국가 원수(대통령, 군주, 총리) 또는 이에 상응하는 개인' '국가 부수반' '국가급 내각 구성원 또는 이에 상응하는 개인' '행정부처의 주요 공식 대변인 또는 이에 상응하는 개인' '국회의원' 등에게 실버마크를 부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트위터는 대통령 배우자의 경우 법적·실무적 측면에서 공인 지위가 없다면 자격이 없다고 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엑스의 자격 기준에는 '국가 원수와 그 대리인 및 배우자'가 포함돼 있다. 공적 지위와 무관하게 영부인은 모두 실버마크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셈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규정 변경은 2023년 5월 하순 대통령실의 민원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대통령실은 '트위터에 김 여사 사칭 계정이 많다'며 트위터 한국지사 등에 수차례 '실버마크를 달라'고 요구했고, 트위터는 결국 김 여사에게 실버마크를 부여했다. 당시에도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대통령실이 외교부를 동원해 트위터를 압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통령실은 "가짜뉴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외교부는 '관련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업무를 진행했다'고 밝혔고, 트위터 측은 '국가기관 등 공인일 경우 내부 정책과 절차에 따라 회색 마크를 부여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일보 취재 결과, '실버마크 민원'이 전달됐던 초기만 해도 트위터 측은 '실버마크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대통령실에 제2부속실 등 영부인 전담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김 여사를 공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논리다. 대통령실이 가장 먼저 동원한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였다. 트위터 측이 난색을 표하자 해당 사실을 대통령실에 통보했다는 게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 기억이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외교부에도 민원을 전달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을 거쳐 트위터 본사에 직접 부탁하자는 것이다. 실제 총영사관에 외교부의 전문이 발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위터 한국지사 측은 외교부에 '자격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알렸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배우자 계정에도 실버마크가 있지만, 미국은 영부인실이 별도로 존재하고 영부인이 그 기관의 대표자라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가 이후 입장을 바꾼 경위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트위터 측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용산에도 되는 것으로 얘기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대통령실이 직접 부탁했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대통령실이 트위터 내부 규정에 반해 실버마크를 부여하도록 압박했다면 업무방해 혐의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와 외교부 공무원들을 동원한 부분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


트위터가 내부 규정에 반해 대통령실 민원을 들어줬는지는 특검팀 조사를 통해 규명될 전망이다. 특검팀은 앞서 실버마크 부여 경위를 살피기 위해 외교부 등으로부터 기초 자료를 받아둔 상태다. 트위터 측은 한국일보에 "(현재 규정에 따라) 국가원수 배우자는 인증 자격 기준에 해당된다"고 답했다가, '2023년엔 배우자 규정이 없지 않았느냐'고 묻자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