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展
25년 만에 한국에서 전시 열려
초기작 인물부터 밀실, 엄마까지
70여년 회화 조각 기록 등 총망라
자기고백과 치유의 예술 펼쳐보여
25년 만에 한국에서 전시 열려
초기작 인물부터 밀실, 엄마까지
70여년 회화 조각 기록 등 총망라
자기고백과 치유의 예술 펼쳐보여
호암 미술관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엄마’ [The Easton Foundation] |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는 어린 시절 밤마다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 조제핀의 투병에도 바람을 피며 가정에 불성실했던 아버지를 지독하게 미워했던 탓이다.
이 적개심이 작품으로 승화된 게 ‘아버지의 파괴’(1974)다. 붉은 살점으로 찟긴 아버지의 육체를 강렬한 붉은색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식탁에서 아버지의 자기과시에 지친 가족들이 그를 끌어내려 사지를 찢고 먹어 치우는 상상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부르주아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이 결정적 작품이 한국에 왔다.
아버지의 파괴(1974) [The Easton Foundation] |
거미 조각 ‘엄마(Maman)’의 작가이자 20세기 현대미술 거장의 개인전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이 8월 30일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한다. 내년 1월 4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작가의 국내 최대 규모 미술관 회고전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106점의 작품을 아우른다.
시드니, 도쿄 등을 거친 순회 전시지만 미술관 컬렉션이 더해지며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전시는 1940년대 초기 회화와 ‘인물(Personages)’ 연작부터 1990년대에 시작된 대형 ‘밀실(Cell)’ 연작, 말년의 섬유 작업, 시적인 드로잉, 대형 설치작 등을 총망라해 펼쳐보인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부르주아는 자전적 서사를 접목시킨 고백적인 예술로 여성 미술의 시대가 된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동료 남성 작가의 그늘에 가려졌던 부르주아의 복권은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이뤄졌다.
꽃(2009) [The Easton Foundation] |
기억, 트라우마, 신체, 시간 등을 주제로 일생을 탐구해온 작가를 머리속을 들여다보듯 1층은 밝은 조명으로 ‘의식’을, 2층은 어두운 조명으로 ‘무의식’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연출했다. 이중에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웅크린 거미’를 비롯해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과 해외 주요 기관 및 개인 소장품 20여점도 포함됐다.
김성원 부관장은 “25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부르주아의 전시다. 한 개인이 평생 질문한 주제가 어떻게 동시대 예술언어로 확장되었는지 볼 수 있는 감동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첫 키워드는 ‘나선’이다. 아이를 품은 듯 배가 불룩한 꽈배기 모양 작은 조각이 천장에 걸려 관객을 맞는다. 청동으로 만든 ‘나선형 여인’(1984)은 작가의 자소상. 남성과 여성, 과거와 현재, 무의식과 현재 등 극단의 요소가 대립하고 공존하는 작가의 특징은 꼬인 나선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 면면에는 ‘야누스적’ 이중성도 가득하다. 라텍스로 만든 남근과 청동으로 만든 여체처럼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재료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재료가 공존한다.
밀실(검은 날들)(2006) [The Easton Foundation] |
주요 출품작인 남성과 여성의 형상을 결합한 청동 조각 ‘개화하는 야누스’(1968), ‘밀실’ 연작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붉은 방(부모)’(1994), 우울과 성적 긴장을 응축한 ‘밀실(검은 날들)’ 등이 감탄을 자아낸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33년간 정신분석을 받았던 작가는 꿈 기록, 작업 노트, 흩어진 텍스트 등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번에 이를 함께 전시해 부르주아의 무의식을 탐험해볼 수 있다.
커플(2003) [The Easton Foundation] |
관람을 마치고 로비로 나오면 천장에 걸린 후기작 ‘커플’(2003)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과 불안과 같은 두 모순적 요소의 지독한 얽힘을 두 나선형 인간의 회전으로 표현했다. 만년에는 모성과 부성을 아우르며 과거와 화해하려 노력했던 거장의 마침표 같은 작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르주아 컬렉션을 보유한 호암미술관의 집념 어린 전시는 용인을 ‘프리즈 위크’의 손님들에게 각인시킬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예술로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치유했던 거장의 글은 전시장 마지막에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가 예술가라면, 이는 그가 온전한 정신을 지녔다는 증표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
입장료 1만6000원.
루이즈 부르주아 [The Easton Found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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