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8월 27일 78세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
김건희 특검이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검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의 뇌물성 협찬 의혹을 집중 수사 중이라는 뉴스가 지난달 있었다.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이름이 소환됐다. 2017~2018년 르코르뷔지에 한국 전시를 김 여사가 기획했다고 한다. 이 때가 처음은 아니다. 화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한 르코르뷔지에 관련 전시는 이보다 앞서 열린 적이 있다.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소개한 기사. 1996년 5월 21일자. |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60년 전 오늘인 1965년 8월 27일 별세했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20세기 건축가 중 건축 전공자들에게 가장 추앙받는 건축가는 아마도 스위스 출신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일 것”이라며 “그는 ‘유니테 다비타시옹’ 같은 최초의 현대식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 그의 작업은 20세기 후반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고 유현준 교수는 설명한다.
‘르코르뷔지에가 주로 활동해야 했던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중략) 주택 대량 생산을 위해서 표준화를 해야 했고 공장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해야 했다. 저렴하게 지어야 하다 보니 장식을 모두 없애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장식 없이 노출 콘크리트 마감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 표준화 작업을 하다 보니 몇 개의 평면이 반복되어서 사용될 수 있게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조선일보 2025년 3월 7일자)
1987년 7월 22일자. 르코르뷔지에의 아파트. |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최초의 현대식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 있다. 1987년 7월 조선일보 윤호미 파리 특파원이 이곳을 취재했다. 마르세유 동남쪽 미슐레 거리에 있는 아파트 앞 정류장 이름은 ‘르코르뷔지에 버스 정류장’. 그 옆 숲 사이로 ‘호텔 르코르뷔지에’가 있다.
특파원이 취재했던 때인 1987년은 르코르뷔지에 탄생 100년을 맞는 해였다. 마르세유에서 열린 ‘르코르뷔지에와 지중해’ 전시회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100주년 행사가 열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지난 65년 여름 이 지중해에서 수영하다 타계한 르코르뷔지에를 찾아 이 아파트 구경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건물의 밑받침 말뚝이며 쇠창살 난간들, 빨강 노랑 원색의 베란다 벽, 그리고 콘크리트 건물 옥상에 수영장과 언덕이 있는 놀이터들은 이미 관광거리가 된 것이다.’그러나 특파원이 본 이 아파트의 장점은 예술성이 아니다.
‘이 20세기 대가의 명작(名作) 속에 살고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저마다 첫마디는 “편리하다” 말뿐이다. 조용하고 부엌이 기능적이고 쓰레기 처리가 완벽하고 이 건물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등등의 얘기들. 서양 사람들이 즐겨쓰는 환상적이다, 멋있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여기에 코르뷔지에의 위대함이 있는 것 같다.’(1987년 7월 22일자)
르코르뷔지에 '롱샹 성당'. |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대단지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이 대세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단지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 기능적인 편리함이라는 가치는 우리나라 아파트가 지향하는 모토이다.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필로티와 옥상정원 같은 컨셉트도 한국에서 확고히 자리잡았다. 르코르뷔지에는 프랑스보다도 한국에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축가인 셈이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은 1952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예술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가 르코르뷔지에를 만났다. 김중업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건축을 배웠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건물이 그의 작품이다. 1962년 설계한 대사관 건물은 원형에서 많이 바뀐 상태로 사용하다가 2023년 리모델링을 하며 원형대로 복원했다.
르코르뷔지에 제자 김중업이 설계한 서울 프랑스대사관. |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는 “독학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개척해 모더니즘 건축의 초석을 놓은 르코르뷔지에에게 끌렸다. 건축가로서 삶을 가르쳐줬다는 의미에서 르코르뷔지에는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
2016년 세계 7국에 있는 르코르뷔지에 건축물 17건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프랑스가 주도해 일본, 스위스, 벨기에, 독일, 아르헨티나, 인도와 공동으로 등재를 추진했다. 도쿄 우에노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 프랑스 롱샹 성당 등이다. 특정 작가의 건축물을 묶어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것은 처음이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인간과 자연을 위한 드라마이자 시(詩)”라며 “권력을 드러내는 도구여선 안 된다”고 했다. 생을 마감한 곳은 4평짜리 통나무집이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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