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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쑥쑥 크는데…규제에 가로막힌 韓, 뒷북 투자 우려도

이데일리 허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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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쑥쑥 크는데…규제에 가로막힌 韓, 뒷북 투자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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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막힌 스테이블코인 투자]②
중기부, 가상자산 사업자 벤처기업서 제외
정책자금 받는 PE·VC, 적극 투자 힘들어
서클, 美 PE·VC 투자로 나스닥 상장까지
“각국 주도권 전쟁…투자 속도 내야”
이 기사는 2025년08월26일 23시30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투자업계의 움직임은 조용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스테이블코인이 속한 가상자산 사업자를 벤처기업에서 제외하면서 모태펀드나 성장금융펀드 등 정책 자금을 출자받는 벤처캐피탈(VC)이나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집행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들어서야 가상자산 사업자를 다시 벤처기업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트렌드에 뒤처진 결과를 낳을 거란 우려가 크다.

미국에선 대형 사모펀드는 물론 벤처캐피탈이 전면에 나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업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서클의 경우 미국 투자업계의 초기 투자를 마중물 삼아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세계 각국이 스테이블코인 패권을 잡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 완화와 더불어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서클 방한에서 소외된 PE·VC

26일 벤처캐피탈(VC) 업계에 따르면 히스 타버트 서클 총괄사장이 한국을 방문해 만난 투자사는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가 유일하다. 해시드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 분야에 특화된 벤처캐피탈로, 서클과의 미팅에서 김 대표는 국내 블록체인 벤처 생태계 투자 방안을 논의했다. 서클은 이번 방한에서 국내 커스터디 기업 코다에 대한 투자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다는 해시드의 최대 투자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클의 이번 방한은 급증하는 스테이블코인 수요에 발맞출 한국 파트너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풀이된다.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020년 267억달러(37조원)에서 2021년 1520억달러(212조원)로 급성장한 뒤 2022년 테라·루나 사태를 겪으며 2023년 1268억달러(177조원)로 위축됐다.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2030억달러(283조원), 이달 24일 기준 2676억달러(373조원)로 다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세에도 국내 투자업계의 투자 집행은 미온적이다. 서클과의 미팅에 국내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탈이 소외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서클은 2015년 시리즈A 투자유치 단계에서부터 골드만삭스, IDG캐피털, 판테라캐피털 등 대형 사모펀드와 VC들의 자금을 받아 성장했다. 올해 나스닥 상장 당시에도 JP모건, 씨티그룹, 블랙록 등 유수의 IB 자금을 흡수하며 기관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았다. 모험자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클이 정작 국내 투자업계는 외면한 셈이다.

[표=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표=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LP 눈치보느라…정책자금 받는 VC, 투자 난항

업계에선 정부 기조 탓에 스테이블코인이 속한 가상자산 업종 투자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기부는 2018년 개정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중개업을 유흥주점업, 카지노 운영업 등과 함께 사행성 업종으로 간주해 벤처 인증에서 제외했다. 벤처 인증이 없으면 세금 감면이나 기술보증기금 보증,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 선정 등 스타트업에 주어지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당시 업종 기준이 바뀌면서 두나무가 벤처 기업 인증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정책 자금을 받아 투자처를 찾는 벤처캐피탈로 이어졌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전체 출자자(LP) 중 정책 자금 비중은 44.7%다. 전체 출자금의 절반은 정책 자금이라는 의미인데, 출자자가 가상화폐나 블록체인 관련 직접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실제 투자에 장애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벤처캐피탈들이 스테이블코인이나 관련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국내 한 벤처캐피탈 고위 임원은 “모태펀드나 성장금융펀드 쪽에선 스테이블코인이든 디지털자산 관련된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라며 “정책기관 자금을 받아서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캐피탈 입장에선 출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최근 가상자산 사업자에게도 벤처기업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배제 이후 7년 만의 기조 변화다. 그간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기업은 기술성과 사행성이 동시에 따라붙으면서 규제 필요성이 더 컸지만, 최근 스테이블코인처럼 안정성과 신뢰성을 높인 자산이 등장하면서 규제 완화 논의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달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이르면 10월 중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美 이어 홍콩·일본도 스테이블코인 ‘속도’

테더, 서클 등 달러 스테이블코인 외에도 홍콩과 일본도 자체 스테이블코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홍콩에서는 이달 홍콩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금융관리국(HKMA)이 라이선스 발급에 나섰고, 일본에선 금융청(FSA)의 승인 하에 3분기 내 엔화 담보 스테이블코인 출시를 앞두고 있다.

특히 벤처캐피탈이나 금융사가 초기 발행 단계부터 개입해 합작 형태로 스테이블코인을 개발하는 경우도 많다. 홍콩의 다국적 투자사 애니모카 브랜드와 스탠다드차타드(SC) 홍콩은 합작 투자 형태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설립했다. 또 홍콩 증권사인 국태군안 인터내셔널은 가상자산 거래 자격을 획득하며 중국계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 사업 진출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다른 국내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투자 수요 자체는 늘어나고 있다. 직접 투자를 받고자 하는 기업들도,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벤처캐피탈을 중심으로 관련 스터디도 많아지는 중”이라며 “아직 본격적인 투자를 논하기엔 시기상조지만, 10월 정부안 발표 이후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