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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레도 되려나…눈부신 청춘의 솔직한 ‘고백의 역사’ [리뷰]

헤럴드경제 손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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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레도 되려나…눈부신 청춘의 솔직한 ‘고백의 역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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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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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보는 내내 생각했다. 참 눈 부시게 빛난다고. 뭐 대단한 것 하나 걸친 것이 없는데 반짝이지 않는 것들이 없다. 캐릭터도, 이들의 행동과 말도, 하물며 여백의 공기마저도 그렇다. 귀여워서 미소 짓고,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온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솔직해서 그런가, 훌쩍 지나버린 두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다. 영화 ‘고백의 역사’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백의 역사’가 오는 29일 공개된다. 영화는 열아홉 소녀 박세리가 일생일대의 고백을 앞두고 평생의 콤플렉스인 악성 곱슬머리를 펴기 위한 작전을 계획하던 중, 전학생 한윤석과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청춘 로맨스다. ‘십개월의 미래’(2020), ‘힘을 낼 시간’(2024)으로 특유의 위트있고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여온 남궁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 박세리와 한윤석에는 배우 공명과 신은수가 분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작명에서부터 남다른 패기를 발산한다. 골프여제 박세리가 화려한 데뷔를 알렸던 1998년을 살아가는 고3 수험생, 그의 이름은 ‘박세리’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악성 곱슬처럼, 꼬일대로 꼬인 ‘고백의 역사’를 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백 성공률 0%의 쓰디 쓴 과거의 교훈으로 ‘다시는 고백하지 않겠다’며 굳건히 다짐해 온 세리. 하지만 학교 최고 인기남 ‘김현’(차우민 분)이 나타나 그의 다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 세리는 자신과 현 둘만 알고 있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그에게 좀 더 다가갈 기회를 노리던 어느 날, 바다에 빠져 눈 앞에서 허우적대는 ‘한윤석’을 구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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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윤석은 서울에서 온 전학생이라는 소개와 함께 세리의 교실로 들어온다. 윤석은 자신을 알아보고 반기는 세리의 인사에도 마음을 꾹 닫은 듯 미적지근하기만하다. 그럼에도 세리는 윤석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윤석이 유일하게 자신의 곱슬머리를 해결해 줄 미용실 원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서다. 긴 생머리가 이상형이 김현에게 고백하기 위해서는 윤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엉겹결에 윤석은 세리와 그의 친구들이 준비하는 일생일대의 ‘고백’ 작전에 동참한다.

“사는 게 이렇게 실없이도 재미있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 윤석은 반짝이는 바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숨 쉬며, 때로는 천진난만하고 때로는 과감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곁에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영화는 함께여서 더욱 행복한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간다. 세리와 윤석, 그리고 세리의 단짝 백성래(윤상현 분)와 고백 작전의 든든한 지원군 3인방 ‘솔.방.울’(‘마솔지’와 ‘방하영’, ‘정다울’의 줄임말이다)은 서로가 함께 한 시간들로 하나하나 그들의 청춘의 역사를 채워나간다. 윤석은 묻는다. 고백을 실패하면 어떻게할 거냐고. 세리는 쉽게 대답한다. 우리들이 함께 한 시간들은 남는 것 아니냐고. 세리는 고백을 향해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간다. 과연 세리는 10대의 마지막 고백에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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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청춘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있다. 배우 한명 한명이 발산해 내는 밝은 에너지가 돋보인다. 신은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세리’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부산이 배경이라, 그가 하는 서툰 사투리마저도 마냥 귀엽다. 공명은 세리와 친구들과 함께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카메라는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며 찬란한 청춘의 조각들을 후회없이 담아낸다.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90년대 말이란 배경은 더 없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킥(Kick)은 음악이다. 아무래도 영화에 흐르는 SES의 노래 ‘아임 유어 걸(I’m your girl)’은 이보다 더 이야기와 잘 어울릴 수 없다. 수학여행 버스에서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들으며 몸을 흔들고, 멀리서 쏘아올린 불꽃이 장작까지 줄을 타고 내려오는 그 시절 캠프파이어 장면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완벽하게 소환시킨다.

남궁선 감독은 “1998년을 휩쓴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반영하려 했다”면서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반가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새로움을 전하고자 작품 곳곳에 심어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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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 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것이든, 잘못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그저 솔직한 내 이야기든 상관없다. 그래서 고백이란 것은 참 어렵다. 상대의 감정과 반응을 우선으로 놓고 내 마음을 털어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고백을 10대의 것이라고 가볍게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준비하며 ‘고백의 순간’을 위해 노력한다. 고백을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최고 인기남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김현은 고백을 받을 때만큼은 상대의 진지함을 공유한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친구의 고백에 살신성인 뛰어드는 단짝 성래와 ‘솔.방.울’은 또 어떤가.

이렇듯 영화는 솔직함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곧게 바라볼 줄 아는 용기의 힘도 안다. 한번의 고백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몇 줄의 메시지가 아닌 그 이상의 노력임을 문득 깨닫는다. 인간의 감정이 쉽고 가볍게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에 이 영화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 후반부에는 기분 좋게 간질거리는 설렘이 기다린다. 모든 것을 기대해도 좋은 영화다. 29일 넷플릭스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