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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칼럼] "국력을 키워야겠다"

매일경제 노원명 기자(wmnoh@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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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칼럼] "국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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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말을 몇 차례 했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도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국력을 얼마나 키우면 미국에 '노'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국력은 유사 이래 지금이 최고다. 가난했던 시절에도 대놓고 국력 탓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 대통령은 과연 어떻게 국력을 한 단계 올려놓을 것인가.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을 찍은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한쪽은 '죽어도 이재명'인 사람들, 다른 한쪽은 이 대통령의 일머리에 기대를 건 사람들이다. 후자는 꼭 이 대통령의 유능함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조건에 주목했다. 절대 과반 의석을 보유한 대통령! 김영삼 이후 이런 호조건에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 대통령의 '실용'이 여대야소에 올라타 좌든 우든 앞으로 나가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에 대한 경계심을 밀어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뚝 떨어진 것은 '일하는 여대야소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당정이 나라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정책을 만들고 국회가 속히 통과시키는 모습을 국민은 기대했다. 대공황 와중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00일 동안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재명 정부가 3개월간 한 일 중에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조국·윤미향 사면이다. 대통령이 산재 사망에 화낼 때마다 또 사고가 터지는 징크스, 참신함에서 시작해 코드로 넘어간 인사, 약발이 일찍 떨어진 코스피도 있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가뭇한 15만원 소비쿠폰처럼 허니문 잔액은 급격히 소진됐다. 정청래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 등 '좌로 전진'보다는 '좌로 후퇴' 느낌이 농후한 법안들을 해치우고 있다. 좌고우면도 없다. 여소야대의 교착이 사라지면 민주당은 책임 있는 여당으로 거듭나고 국정은 팽팽 돌아가리란 기대는 무색해졌다. 국정은 반대 쪽으로도 팽팽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사람만큼 조직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이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라이벌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같은 당 선배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보다 지지층으로부터 칭송받는 대통령이 되는 것은 큰 노력이 필요 없다. 이 대통령에게는 김대중·노무현보다 강력한 여당이 있고 문재인이 갖지 못한 노련함이 있다. 때마침 야당 복까지 있어서 5년 내내 지지층이 원하는 일만 해도 다음 총선에서 압승하고 정권 재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임기 중 개헌을 한다면 이 대통령은 5년 단임제 마지막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5년 단임제는 1987년 정치 타협의 결과물이지만 숭고한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재선에 한눈팔지 말고 역사와 나라만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6공화국 대통령들 다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몇 명은 정치적 조건이, 일부는 능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에게는 우호적 의회 환경, 행정가로서 경험이 있다. 목표치를 지지층 눈높이에 맞추기엔 아까운 조건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 박정희의 이 독설을 좌파진영은 주로 그를 조롱하는 용도로 악용하는데 그렇게 야비할 이유는 없다. 박정희는 사랑받기보다 국력을 키우는 데 관심이 있었다. 리셜리외, 비스마르크, 리콴유도 같은 운명이었다. 조국이 위대해지면서 그들도 위대해졌다. 이 대통령은 대중의 사랑을 열망하며 살았고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그만하면 사랑은 충분하지 않은가. 정치인은 지지층에 아부해서는 위대해질 수 없고 그런 지도자를 둔 조국이 위대해진 사례도 없다. 이 대통령이 야망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 Be ambitious!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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