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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연봉이 1달러일까

머니투데이 유효상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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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연봉이 1달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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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이달 초 테슬라 이사회는 일론 머스크가 향후 2년 동안 CEO 직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약 42조 원에 달하는 스톡옵션 부여를 의결했다. 이사회는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머스크가 테슬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보상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스톡옵션의 행사가는 23달러에 불과해, 8월 25일 주가 340달러가 유지된다면 약 15배의 차익을 거둘 수 있다. 11월 6일 주주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지난 2018년에도 주주총회에서 머스크에게 78조 원의 스톡옵션 보상안을 승인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소액주주가 소송을 제기해 델라웨어 법원이 작년 말 보상안을 무효로 판결했다. 이 소송을 심리한 판사는 테슬라 이사회가 사실상 머스크의 통제하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보상 패키지가 지나치게 과도하여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머스크와 테슬라 이사회는 이 판결에 불복해 델라웨어 대법원에 상고하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새로운 보상안을 고민해왔다.

글로벌 빅테크기업 CEO들의 연봉은 매우 높으며,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2023년 기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3160억 원,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는 약 1100억 원, 애플의 팀 쿡은 880억 원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전문경영인이다. 그에 반해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과 레리 페이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스냅의 에반 스피겔 등의 연봉은 단지 '1달러'이다. 세금 공제 후 약 93센트이고, 2주마다 4센트를 받는다. 이들은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들이다.

'연봉 1달러'는 글로벌 IT 업계에서 관행처럼 자리를 잡았다. 개인 재산이 많은 빅테크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스스로 연봉을 줄이고 객관적인 성과에 따라 스톡옵션 등으로 보상을 받겠다는 것이다. 연봉은 1달러이지만, 경영 성과가 좋으면 주식 보상 등을 통해 실제 보수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1달러 클럽 멤버 중에는 이미 충분한 부를 축적했다며 무보수로 일하는 CEO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부터 2011년 사망할 때까지 보너스까지 마다하며 연봉 1달러를 받았다. "애플은 창업자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것이며, CEO는 기업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잡스의 경영철학이 업계 후배들에게도 전수되고 있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페이지와 브린도 2004년 구글 상장 이후부터 경영진에서 물러날 때까지 10년간 매년 1달러의 연봉만 수령했다. 유명 CEO들의 '1달러 클럽' 동참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LA타임즈는 1달러 CEO를 '새로운 지위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저커버그는 "나는 이미 충분히 돈을 벌었고,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며 연봉 1달러를 선언했다.

한편 기업가치 수백조 원에 달하는 오픈AI의 CEO 샘 알트만의 연봉은 한화로 1억 원 정도다. 그는 전문경영인이지만 '건강보험료를 낼 수준'만 받겠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알트만의 순자산을 최소 2조 8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 자산은 오픈AI가 아닌 우버, 에어비앤비, 레딧 등에 투자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의 연봉은 10년 만에 49% 인상되어 금년에 21억 원이 됐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CEO로는 상당히 소박한 금액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젠슨 황도 1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연봉 1달러의 원조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정부에서 무보수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보수 없이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형식적으로 1달러를 받는 것으로 계약한 것이다. 언론에 '1년에 1달러를 받는 남자들'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후 위기에 처해 있던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의 CEO였던 리 아이아코카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한 것이 오늘날 재계로 확산되는 전기가 되었다. 아이아코카의 노력으로 크라이슬러는 재기에 성공하였고, 1달러 연봉은 '솔직한 리더십'과 '희생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겠다는 CEO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본 홍보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룹 회장들이 실적이나 성과와는 상관없이 매년 엄청난 연봉을 받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얼마 전 공개된 금년 상반기 상장기업 임원들의 보수를 보면,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대기업 총수는 163억 1000만 원을 받은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이었다. 작년보다 70% 늘었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도 104억 원을 받았다. 5개 계열사에서 124억 2100만 원을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작년 대비 2.3배가 올랐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98억8100만 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92억 2400만 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92억 900만 원을 수령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대기업 오너들은 거액의 보수를 받았다. 심지어는 경영난으로 지배 구조 개편을 추진 중인 두산그룹 회장이 최고 연봉을 받았다.

한편 에이피알의 정재훈 전무와 이민경 전무는 스톡옵션 행사로 각각 168억 2000만 원, 166억 77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두며 총수들보다 많은 172억 7800만 원, 171억 3500만 원을 받아 화제가 됐다.


최대주주인 총수는 회사 경영실적이 좋아지면 주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주식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와 무관한 총수들의 막대한 연봉은 자제되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기업의 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객관적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총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사외이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왜 한국은 '1달러 클럽' 같은 상징적 리더십이 부재할까.

해외 성공 기업의 CEO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래 투자와 인재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엔비디아가 적자를 기록했을 때, 젠슨 황은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하는 대신 GPU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할 인력에 투자하겠다고 설득했다. 경영자가 솔선수범하여 손해를 감수하지만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성공하여 화려하게 비상한 히타치는 삼성·LG 등 후발주자의 추격에 밀려 8조 원이라는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었다. 그러나 비주력 사업을 모두 매각하고, 디지털과 전력 인프라로 사업을 전환하여 현재는 5조 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성공에는 이사회가 있었다. 외국인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등 독립성을 높였고, 이사회 멤버의 75%를 사외이사로 채웠다. 중요한 안건은 반드시 치열한 논의를 거쳐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위기가 오면 나쁜 기업은 사라지고, 좋은 기업은 살아남고, 위대한 기업은 발전한다."고 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부활을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자신에 대한 보상보다는 그 어느 때보다 인재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줄 'K- 1달러 클럽'의 등장을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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