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주한미군 남친에 성폭행 당했는데…‘강간죄’ 불기소한 검찰

경향신문
원문보기

주한미군 남친에 성폭행 당했는데…‘강간죄’ 불기소한 검찰

서울맑음 / -3.9 °
1년간의 교제폭력 뒤 고소
수원지검 “심신상실 아니다”
피해자 의심하고 추궁식 조사
성병엔 “과거 감염 가능성”
피해자 “미군이 더 보호해줘”
연인 관계의 주한미군에게 성폭행 당하고 지속적인 강간과 폭행 피해를 입었는데, 검찰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준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불기소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계속된 피해 끝에 겨우 상대방을 고소한 김수현씨(27·가명)는 25일 기자와 인터뷰하며 “원치 않은 성관계 때문에 성병을 얻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고 있는데 한국 수사기관은 가해자 말만 들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미군 수사대의 접근법은 피해자 중심이라는 점에서 달랐다고 했다.

김씨는 미국 공군 소속 A씨(34)와 2023년 7월 말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났다. 김씨는 “술을 마시고 자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어 깼더니, 상대방이 내 옷을 모두 벗겨 성폭행하고 있었다”며 “이후 질염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됐다고 했다”고 전했다.

충격을 받은 김씨는 이별을 고했지만, A씨는 사과하고 “병원비를 책임지겠다”며 붙잡았다. 김씨는 “대학생이라 검사와 치료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부모님께 털어놓기엔 죄책감이 너무 컸다”고 했다.

김씨가 지난해 9월 고소하기 전까지 A씨는 수차례 김씨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강제했고 뺨을 때리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잦았다.

겨우 A씨를 고소했는데 한국 수사기관은 끊임없이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정신과 진단서, 성병 감염 내역, 폐쇄병동 입원 기록 등을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준강간치상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불기소 이유서에서 “성병이 이전에 감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고, 김씨가 A씨에게 콘돔이라도 써달라고 말한 것을 들어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검찰에서는 ‘강간당했다면서 왜 계속 상대방과 만났나’ ‘성병에 왜 그렇게 예민하냐’ 같은 질문을 했다. 피해자라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조사가 아니라 추궁 같았다”고 했다.


김씨를 보호한 건 미군이었다. 한국 수사기관은 “접근금지 보호조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미 공군 특별수사국은 A씨에게 즉시 접근금지 조처를 했다.

사건 당일은 물론 사건 전후 사정을 진술하는 과정, 질문의 내용, 피해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잣대도 달랐다. 수사관은 김씨 진술을 들으며 “A씨 주변인에 대해서도 아는 대로 알려달라”고 했다. 이전의 행적과 평소 행실을 되짚어 추가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씨가 “목이 졸렸다”고 진술하자, ‘목졸림’에 대한 항목만 수십가지 쓰인 평가지를 작성하게 했다. 한국 수사기관에서 경험하지 못한 절차였다.

김씨는 “미군에서 17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으면서 한 번도 ‘피해자다움’을 요구받지 않았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더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제폭력을 연인과의 ‘단순 다툼’으로 보면 안 되는데, 한국 수사기관에선 계속 2차 가해를 당하기만 한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A씨를 특수상해와 폭행 혐의만으로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상세히 밝힐 수 없다”고 했다. A씨의 첫 공판은 26일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열린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