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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퇴치에 280조 쏟아부을 것” ‘세계 보건 대통령’ 한국과 손잡다

조선일보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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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퇴치에 280조 쏟아부을 것” ‘세계 보건 대통령’ 한국과 손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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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방한] 빌 게이츠, 2박 3일 숨가쁜 행보
3년 만에 방한한 빌 게이츠(70·사진)의 광폭 행보가 눈길을 끈다. 게이츠의 해외 방문은 도착 직전까지 일정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며 보안·경호도 국가 수반급으로 이뤄진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세계적 거물’ 게이츠가 20일 저녁 한국에 도착해서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를 했다. 이어 21일 오전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고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김민석 총리와 오찬 회동을 한 뒤 외교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여의도로 건너가 우원식 국회의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났다. 밤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회동하고 22일에도 한국 기업인들을 연달아 만난 뒤 출국한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자신의 힘으로 당대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른 기업인이다. 지난 2000년에 설립한 빌&멀린다게이츠재단(현재는 게이츠재단)을 통해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뒤 현재까지 136조원을 투입해 에이즈·결핵·말라리아 등의 질병과 빈곤 퇴치에 앞장서 왔다.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둔 게이츠재단은 직원이 2000명을 넘는 세계 최대 규모 자선 재단이다. 게이츠는 지난 5월 재단 설립 25주년을 맞아 “2045년까지 향후 20년간 개인 재산의 99%와 게이츠재단의 기부금을 합쳐 총 2000억달러(약 280조원)를 질병·빈곤 퇴치에 쏟아붓겠다”고 했다. 지난 25년간 지출한 돈의 2배를 향후 20년간 다 쏟아부은 뒤 재단을 해산하겠다는 파격적인 구상이다. 당초 게이츠는 자신이 사망한 뒤 20년 후에 재단 운영을 종료할 생각이었는데 그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도움이 절실한 문제들이 너무 많아 사람들을 돕는 데 쓸 수 있는 자원을 그냥 쥐고 있지 않겠다”며 자산의 사회 환원에 더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을 접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을 접견하고 있다./연합뉴스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통위를 방문해 의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통위를 방문해 의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국가의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질병에도 사망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이에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는 2000년대 초반에 GAVI 등의 글로벌 보건기구를 설립해 저소득 국가 아동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등의 질병 퇴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말라리아, 결핵 등의 종합 사망률이 61% 감소했다. 게이츠재단도 이 같은 글로벌 보건기구를 적극 지원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재정이 어려워진 각국이 잇달아 원조 예산 삭감을 발표하고, 심지어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HO 탈퇴를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WHO 예산의 22%를 분담하는 최대 기여국이다.

세계 보건 예산의 축소로 저소득층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위기에 처하자 게이츠가 발벗고 ‘세계 보건 대통령’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게이츠는 인공지능(AI)과 백신 기술의 발달이 역사적 변곡점에 접어든 지금부터 향후 20년이 인류의 사활을 가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원과 기술을 집중 투입해 질병 퇴치 ‘기회의 창’을 열자는 것이다. “현재 연간 500만명 수준인 아동 사망자 숫자를 향후 20년간 200만명 이하로 줄일 것”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런 여정에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 방한한 것이다. 방한 직전 본지 기고문에서 게이츠는 한국은 빈곤·기아·질병과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 등 여러 국가가 투자한 덕에 현재의 번영을 일궜음을 강조한 뒤 “한국이 축적한 인재와 자원, 그리고 혁신 역량을 활용해 다른 나라들을 돕고 동시에 자국의 번영과 건강도 함께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번 방한에서 게이츠는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국내총생산의 0.7%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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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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