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심우정 검찰총장 취임식에 참석한 신응석 당시 서울남부지검장(가운데). 한겨레 자료사진 |
이른바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수사했던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관봉권의 띠지와 스티커를 ‘실수로’ 폐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폐기 과정과 사유에 대해 사후 감찰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증거를 인멸한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 박건욱)가 지난해 12월 전씨 집에서 찾아낸 현금은 1억6500만원으로, 5만원권 3300장의 관봉권이었다. 이 가운데 5천만원은 비닐 포장을 벗기지 않은 상태였고, 나머지 1억1500만원을 묶은 띠지에도 검수관의 도장과 취급 지점 등이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관봉권은 5만원권 100장을 띠지로 묶고, 10개 묶음을 비닐로 포장한 뒤 ‘스티커’를 붙인다.
관봉권 띠지와 스티커는 현금을 검수한 날짜와 시간, 담당자 코드 등 출처를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는 기초자료다. 검찰은 ‘직원이 압수물을 공식 접수하기 위해 현금을 세는 과정에서 실수로 띠지와 스티커를 버렸다’고 밝혔는데, 이 해명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띠지와 스티커를 폐기한 사실을 지난 4월에야 인지했다는 해명도 수상하긴 마찬가지다. 띠지와 스티커는 관봉권 수사의 출발점인데, 지난해 12월 압수수색 뒤 넉달 동안 아예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자백하는 꼴이다.
더구나 당시 남부지검 지휘부는 “수사 진행 중에 감찰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감찰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관련된 중대 수사를 하면서 핵심 증거를 폐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는데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감찰을 생략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지휘부가 증거 인멸에 연루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당시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은 대표적인 ‘친윤 검사’로, 정권교체 뒤 검찰을 떠났다.
이 관봉권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사흘 뒤인 2022년 5월13일 한국은행이 검수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쪽이 건진법사 전씨에게 특활비를 건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전씨가 활동했던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 비용을 사후 지급한 것인지, 아니면 전씨가 불법으로 조달한 대선자금을 갚으라고 준 돈인지 등을 수사로 밝혀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핵심 단서를 폐기해 진상 규명이 어려워지게 됐다. 조직적 은폐 행위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9일 감찰을 지시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행위를 더 이상 유야무야 넘어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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