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일할 곳이 없다는 인재들
M7 근무 30대 엔지니어 5인 심층 인터뷰
일자리도 정책도 인재들 뜻과 '미스매치'
한국은 개인 기여도보다 회사 실적 중요
프로젝트 실패하면 책임질 사람부터 찾아
대기업 떠나서 스타트업 가는 건 바보짓?
학생·포닥 지원받아도 기업·기관 연봉은 ↓
"주니어 연차지만 제가 책임지는 업무도 있고, 노력한 건 늘 존중받습니다. 더할 나위 없죠."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원래 한국 취업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석·박사 과정 중 실리콘밸리 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고 했다. "인턴 의견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기업 문화"가 혁신의 원동력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A씨처럼 실리콘밸리로 향한 기술인재 5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고국의 인재난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을 들었다. 이들은 '매그니피센트7(M7)'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 7대 빅테크와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1~5년 차 30대 초·중반 엔지니어로, 모두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으로 향했다.
M7 근무 30대 엔지니어 5인 심층 인터뷰
일자리도 정책도 인재들 뜻과 '미스매치'
한국은 개인 기여도보다 회사 실적 중요
프로젝트 실패하면 책임질 사람부터 찾아
대기업 떠나서 스타트업 가는 건 바보짓?
학생·포닥 지원받아도 기업·기관 연봉은 ↓
편집자주
기술인재들은 일할 곳이 없다며 외국으로 가고, 기업은 뽑을 사람이 없다며 해외에서 데려오려 한다. 정부 대책들은 뚜렷한 효과가 안 보인다. 한국일보는 기술인재를 둘러싼 이 '미스매치' 현상을 3회에 걸쳐 심층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한다.게티이미지뱅크 |
"주니어 연차지만 제가 책임지는 업무도 있고, 노력한 건 늘 존중받습니다. 더할 나위 없죠."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빅테크 기업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원래 한국 취업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석·박사 과정 중 실리콘밸리 한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미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다고 했다. "인턴 의견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기업 문화"가 혁신의 원동력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A씨처럼 실리콘밸리로 향한 기술인재 5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고국의 인재난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을 들었다. 이들은 '매그니피센트7(M7)'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 7대 빅테크와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1~5년 차 30대 초·중반 엔지니어로, 모두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미국으로 향했다.
'능력만큼 보상' 단순 원칙이 인재들 사로잡았다
인재들은 실리콘밸리행을 선택한 공통된 이유로 '보상'을 꼽았다. "초봉 기준 한국보다 최소 2배에 달하는 연봉은 현지의 높은 물가를 감안해도 매력적이었어요." 올해 커리어를 시작한 B씨 말이다.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보상의 핵심은 돈만이 아니다. 능력을 발휘한 만큼 인정을 받는 문화야말로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다. 4년 차 엔지니어 C씨는 "성과를 많이 낼수록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구조라 더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개인 기여보다 연공서열에 따라 보상이 평준화하는 한국 기업 문화는 젊은이들에겐 감점 요소다. B씨는 "한국 대기업에 취업한 선배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회사 실적에 따라 보너스가 결정된다'며 답답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적 시도가 힘을 받을 리 없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히 연구 기간에 돈을 더 주며 해외 인재의 한국행을 유도하겠다는 정책에 회의적이다. 정부가 6월 시작한 '이노코어' 사업이 대표적이다. AI 분야 박사후연구원(포닥) 400명에게 포닥 평균 연봉의 1.8배인 9,000만 원을 보장해 인재 유출을 막고 해외 연구자들을 끌어들인다는 내용이다. 5년 차 엔지니어 D씨는 "취지는 좋지만, 포닥이 끝나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국내 기업이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제시하는 연봉이 그보다 낮은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기업의 대우와 문화, 정부 지원 모두 젊은 인재들 눈높이와 '미스 매치(부조화)' 상태다.
"'실수해도 괜찮아'란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실리콘밸리 능력주의 이면에는 잦은 이직과 쉬운 해고가 있다. 하지만 능력주의 한복판에 들어온 인재들은 오히려 "경쟁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좋은 제품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분위기 덕분이다. C씨는 "처음 입사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실수해도 괜찮아'였어요"라고 회상했다. "오히려 실수나 실패를 하면 바로 공유하고 뭘 개선할지 함께 고민해 빨리 해결하죠. 그래야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성과도 좋아지니까요.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책임질 사람부터 찾는 한국 기업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죠."
차세대 유니콘을 꿈꾸는 테크 스타트업이 많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3, 4년마다 이직을 하는데,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다 보니 대기업에 있다가 유망 스타트업으로 가는 일도 흔하다. M7 기업 중 한 곳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엔지니어 E씨는 "당장 유명하진 않아도 앞으로 이 회사가 잘 되면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그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다른 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E씨는 "한국에서는 이름난 기업에 있다가 스타트업 가는 건 바보짓이라고 보잖아요. 하지만 대기업에 취직해도 40대부터 잘릴까 봐 걱정하던데, 다양한 도전이 가능한 실리콘밸리가 더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의대 못 가서 공대 간 취급받는데 누가 남겠나'
이공계 인재의 노력과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한국과 멀어지는 이유다. "왜 의대 안 가고 공대 갔어?" "지금이라도 다시 의대에 도전하는 게 어때?"란 말을 이들 5명 모두 수차례 들었다고 했다. '능력이 부족해 공대 갔다'고 보는 시선을 넘어, 아무리 노력해도 의사만큼 벌기 어려운 현실도 이들을 위축시킨다. B씨는 "공대에 가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지만 가끔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의대에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5명 중에 ‘10년 내에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있다’고 답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10~20년 뒤면 고려할 수 있겠다는 대답은 있었는데 ‘가족이 한국에 있어서’ 또는 ‘노후에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인재난을 벗어나려면 기술인재가 의사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도 개선돼야 한다. 공학도를 꿈꾸거나, 공대와 의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후배에게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C씨는 한참 뜸을 들이다 어렵게 답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섣불리 공대 가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저도 공대를 나왔지만 의대에 비하면 공대생에 대한 대우가 너무 안 좋은 게 사실이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을 믿었다가 나중에 그 친구가 후회하길 바라지 않아요.”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