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비구조 속 예술의 본질적 가치 조명"
옥승철 개인전 전시 전경 |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한 작가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로마 제국 아그리파 장군 조각상을 보며 소묘 작업을 한다. 그러면 작가가 그려낸 소묘 작품은 원본일까. 아니면 그가 보고 그리던 조각상이 원본일까. 그것도 아니면 로마 시대 아그리파 장군이 원본일까.
원본과 복제, 디지털 이미지와 실재성 사이에서 관념을 탐구해 온 작가 옥승철의 개인전 '프로토타입'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를 원본 삼아 회화나 조각처럼 유일성을 지닌 전통 미술 작품을 표현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인쇄한 뒤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칠해 물성을 부여하거나 디지털 이미지를 조소 작품으로 만드는 식이다.
대중 앞에 나선 적 없는 작가는 서면 답변을 통해 "음원이나 영상은 원본 소유에서 플랫폼을 통한 구독으로 소비 방법이 바뀌었다"며 "전시도 실체가 없는 유통 구조의 플랫폼처럼 설정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옥승철 개인전 전시 전경 |
3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공상과학영화 속 우주선 내부 같은 녹색 조명의 복도를 따라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복도 중앙에는 사거리가 나오고 갈라진 길의 바닥에는 각 섹션을 의미하는 1∼3의 숫자가 적혀있다. 각 섹션으로 들어갈 때마다 이 자리로 돌아왔다가 녹색 조명의 복도를 거쳐 전시장으로 들어가는데 작가는 이를 다음 전시 공간으로 '로딩'되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1섹션 첫 작품으로 높이 2.8m에 이르는 대형 조각상 '프로토타입' 세 점이 놓여 있고, 조각상 뒤로는 전면 거울이 설치돼 있다.
프로토타입이 기초, 표준이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세 작품은 앞으로 진행될 전시의 '기본값'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시 내내 이 조각상 얼굴을 기본으로 변주된 작품들이 이어진다.
옥승철 개인전 전시 전경 |
'캐논' 시리즈는 고전 석고상을 연상시키는 조소를 중심으로 평면 조각과 회화, 드로잉으로 구성된 작품들이다. '줄리앙' 흉상에서 시작해 대리석, 석고상, 회화로 이어지는 기존 미술 형식을 재연한 작품으로 원본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같은 얼굴을 가지고 헤어 스타일만 바꿔가며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바꾸거나 표정이나 시선에 따라 감정의 차이를 나타내는 등 끊임없이 변주하며 무엇이 원본이고 복제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다.
옥 작가는 "예술이 지닌 본질적 가치들이 디지털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며 "관객이 복제와 유통의 경험을 체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유료 관람.
옥승철 개인전 전시 전경 |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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