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코노믹리뷰 언론사 이미지

[HMM 부산 이전론, 명과 암 ②] 리스크는 뒷전?

이코노믹리뷰
원문보기

[HMM 부산 이전론, 명과 암 ②] 리스크는 뒷전?

속보
백하나-이소희, 배드민턴 왕중왕전 여복 2년 연속 우승
[박상준 기자]
HMM 타코마호. 사진=HMM

HMM 타코마호. 사진=HMM


정부와 부산시를 중심으로 HMM 부산 이전론이 급부상 중이다. 대한민국 최대 국적 원양 정기선사인 만큼 서울에 있던 본사를 해양 도시 부산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조 단위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다.

HMM은 비록 법적으로 민간회사지만 정부 지분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각각 36.02%, 35.67%의 비율로 1, 2대 주주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민간 기업과는 달리, 정부가 여차하면 의결권을 앞세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등 부산 이전 가능성도 낮지 않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HMM 임직원들과 업계 전문가 사이에선 "기대 편익은 부풀려지고, 정작 리스크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국가 수출입의 99.7%를 해운에 의존하며, 그 해운업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는 HMM의 본사 이전인 관계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운기업 소재지는 반드시 해안에?…"진리 아니다"

전문가들은 '해운기업'의 본사가 반드시 부산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해양수도 부산을 상징하는 기업이 될 수는 있어도 국가 경제 차원에서 이득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해상운송경영학 박사)는 "HMM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지역 인재 고용과 세수가 일부 늘어나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해운은 배 운항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닌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과 운용이 중요한 국제업인데, 현재 글로벌 주요 선사들의 한국 대표부는 전부 서울에 몰려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 자체가 내수 경제 활성화나 국내 고용 창출보다 국제 무역, 외화 벌이에 특화된 '금융업'이라는 시선이다. 이를 위해선 수도를 중심으로 탄탄한 네트워크를 다지고 무역 흐름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교수는 "이미 부산에 해양 관련 연구소, 선급, 공기업 등 다수가 몰려있음에도 전혀 시너지가 나고 있지 않다"며 "정작 클러스터 역할도 하지 못하는 클러스터에 물리적으로 기업체들만 끌어내리는 것이 능사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도 "비즈니스는 배에서 이뤄지는 게 아닌 사무실에서 이뤄진다"며 "단순히 본사 사무실과 법인 소재지 주소를 물리적으로 이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최고 경영진과 주요 핵심부서 임직원들이 부산으로 이전을 하고 모든 해운물류 관련 비즈니스와 네트워크가 부산에서 이루어진 다음에야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MM 선박금융을 지원하는 산업은행. 서울에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HMM 선박금융을 지원하는 산업은행. 서울에 있다. 사진=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실제로 해운업에서 중요한 업무인 선박금융업무는 보통 국가 금융허브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선박금융과 밀접하게 연관된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모두 소재지가 서울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글로벌 시장은 주요 해운 동맹들이 존재하고, HMM 역시 소속된 '프리미어 얼라이언스'를 통해 해외 화주와 접촉하고 신뢰를 쌓는다"며 "비즈니스적 판단이 아닌, 정부 의지로 일방적 본사 이전이 결정된다면 글로벌 협력자들에게 파트너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주요 해운사의 본사 소재지가 해안이며, HMM도 이에 맞춰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 역시 다소 모순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세계 1위' 선사 MSC의 본사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스위스는 인접한 바다라곤 하나도 없는 내륙국이다. 제네바는 글로벌 금융 허브로 MSC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선대(673만TEU, 1TEU=6m 길이 컨테이너 1개)를 운영한다. 세계 8위 선사 HMM과는 순수 선대 체급만 7배 이상 난다.

세계 6위 일본 ONE의 경우엔 아예 본사가 외국에 있다. 지주사만 도쿄에 위치하고, 사업회사는 싱가포르 소재다. 지역 경제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함에도 일본 최대·최중요 선사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HMM보다 2배 이상 많은 선대를 보유하고 있다.

7위 대만 에버그린 본사는 타오위안시 루주구에 있다. 타오위안시는 바다와 인접했으나, 정작 컨테이너선이 기항하는 대형 항구는 없다. 그럼에도 에버그린 역시 HMM의 두 배 수준 선대를 운용한다.

중장기 투자 계획만 23조원…부산 인프라 마련에 뒷전 될라

HMM은 글로벌 해운 경기 침체와 경쟁 심화, 환경 규제 강화까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해운사들의 실적을 책임졌던 높은 해상운임도 2022년 이후 우하향하고 있다. 2022년 호황기 발주된 선박들도 2024년부터 대거 인도되며 공급 과잉까지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빠르면 2026년부터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시작되리라 보고 있다.

HMM 중장기 투자 전략. 사진=HMM

HMM 중장기 투자 전략. 사진=HMM


현재 해운업계의 신조 컨테이너선 공급량은 연간 6% 수준으로, 한 번 인도하면 30년을 운항하는 선박 시장에 이 정도 공급량은 치명적인 운임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요 선사들은 여전히 보유 선복량의 10~40% 가량의 오더북(발주잔량)을 유지하면서 선대 확충에 나서는 모양새다. 불확실성 때문이다. 시장 상황이 어지러울수록 선사들은 외부에 의존하기보단 자체 선박량을 늘리고, 노선을 다양하게 확보해서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자 한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발주세는 기호지세"라며 "상위 선사를 중심으로 조선소 도크 선점과 선대 확충 바람이 불고 있다. 공급과잉이 두렵다고 발주를 멈추면 2년 후에는 발주로 몸집을 불린 선사들에게 체급 싸움에서 밀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HMM 역시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난해 9월 중장기 전략을 공개하며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컨테이너에 11조원을 투입해 130척, 155만TEU를 운용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아직 눈에 띄는 발주는 없다. 해운 컨설팅 기관 알파라이너의 추산치에 따르면 7월 28일 기준 HMM의 신조선 오더북은 6만TEU로 전체 선복량의 6.5%다. 같은 기간 1위 MSC는 32%(215만TEU), 7위 에버그린은 40.9%(75만TEU)의 오더북을 유지 중이다. 당장 상위 10위권 선사 중 선복량 대비 오더북이 10% 미만인 회사는 HMM이 유일하다.


문제는 업계 경쟁자들보다 선대 확충 속도도 느린 HMM에 '부산행'이라는 '돈 나갈 구멍'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부산상공회의소는 최근 'HMM 본사 유치 경제효과 및 유치전략' 보고서를 통해 "HMM 본사를 부산으로 옮긴다면 향후 5년간 총 15조6000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며 "HMM이 향후 5년간 매년 영업이익의 20%를 재투자하는 전제 하에 이뤄진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물류학 교수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내실 다지기에 집중해야 할 시기고, 영업이익 재투자 역시 전적으로 선박 구매와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에 쓰여야 한다"며 "자칫 부산 사옥 건립이나 인프라 구축 등에 투자 재원이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고용 창출 효과도 글쎄…"육상직 1000명 겨우 넘긴다"

HMM의 본사 이전이 지역 고용 창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생각할 문제다.

해운업, 특히 '컨테이너 정기선' 분야는 노동 집약 산업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4년 말 기준 HMM의 선박 운항을 담당하는 해상직 직원은 총 827명이다. 반면 2025년 1월 말 기준 HMM이 운용 중인 선박은 모두 130척에 달한다. 단순히 나누기만 해도 선박 한 척당 선원이 6명 정도만 투입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선박이 한 번에 운항하지는 않고, 일부 외국인 선원도 투입되는 것을 생각하면 한 척당 선원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러나 그마저도 척당 10~20명 가량이다.

실제로 HMM이 보유 중인 2만4000TEU급 초대형컨테이너운반선 'HMM알헤시라스호'는 웬만한 종합운동장급 크기를 자랑함에도 승선 인원이 선장 포함 23명가량이다. 화물 선적·인도·급유 등 대부분 업무가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당장 선원법에서도 1만6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 기준 최소 승선 인원을 14명으로 정해 놓은 등, 선박 운항에 많은 인원이 필요치 않다.

철강과 조선 등 노동 집약 제조업이 고용을 창출하는 포항·울산·거제 등과는 다른 양상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등 대형 조선소 하나가 원청과 하청을 합쳐 3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반면 HMM의 경우 보유 선박 수가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도 선원 수는 2000명을 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HMM의 초저온 냉동 컨테이너 ‘울트라 프리저. 이런 컨테이너 2만40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를 단 20명 내외 인력이 운항한다. 사진=HMM

HMM의 초저온 냉동 컨테이너 ‘울트라 프리저. 이런 컨테이너 2만40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를 단 20명 내외 인력이 운항한다. 사진=HMM


그렇다면 정부와 부산시 계획대로 HMM 본사를 이전하며 육상직 거점도 부산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이 역시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전국 단위 공개 채용을 실시하는 대기업일뿐더러, 육상직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1063명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산시 인구(326만명)를 고려하면 본사 인원과 그 가족이 이전해도 지역 경제나 고용에 큰 영향을 주기 힘들다.

결국 HMM이 국가 무역에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지역 고용 창출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한편 이 문제는 부산 경제계를 중심으로 거론되는 '부산 사옥 건설' 필요성과도 상충한다.

부산상의 보고서는 HMM 이전과 함께 부산에 50층 규모의 지능형 사옥을 마련할 경우, 1조8000억원이 넘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4570명의 고용 유발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현재 임직원 2000명이 채 되지 않는 HMM 현실상 50층의 건물 수요가 발생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장성철 HMM 육상노조 위원장은 통화에서 "현재 HMM은 여의도 파크원을 8층 임대해 사무실로 사용 중인데, 실제로 업무 공간은 7층 가량이고 나머진 카페와 휴식공간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산상의에서 제시한 50층은 완전히 허황된 숫자"라고 비판했다.

넘어야 할 장벽, 구성원 반대

이전에 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론 '임직원 반발'도 극복해야 한다.

분위기는 나쁘다. 우선 HMM 노조는 육상직원들로 구성된 육상노조와 해상직원으로 구성된 해원노조로 나뉜다. 이중 특히 반발하는 것은 서울 본사 근무자가 다수 배속된 '육상노조'다.

육상노조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인 6월 4일 성명을 게재하고 "유세 과정에서 정부 지분을 활용한 강제 이전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상장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정치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유세 도중 "HMM 노조의 동의도 얻어냈다" 발언한 바 있으나, 본지의 노조 취재 결과 "북극항로개척추진단 참여 협약에 참석한 것이 본사 이전에 찬성한 것처럼 와전된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육상노조는 "대주주가 정부 기관이라는 이유로 민간기업을 강제로 이전하는 것은 수도권에 삶의 터전을 잡은 임직원과 그 가족 공동체의 안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민간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장성철 위원장은 "일방적인 본사 이전이 추진이 계속된다면 노조답게 투쟁할 수밖에 없다"며 "당장 정부 차원에서 임직원 거주 이전 등을 지원한다고 해도, 맞벌이 부부나 자녀 교육 문제 등 대안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임직원 정주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도 회사 자금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경우엔 주주들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노조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책을 밀어붙이며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기보단 최대한 온건한 방향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해수부 공직자와 HMM 노조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형식으로 만나 자주 소통하고 머리를 맞대겠다"고 약속했다.

이재성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역시 당초 7월 둘째, 셋째 주에 HMM 양대 노조와 각각 상견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불발됐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해 "현재 정부가 계획하는 해양 4대 추진 과제 중 하나에 HMM이 있는 것은 맞다"며 "다만 노조 측에서 노동자끼리 먼저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정당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당과 기업 노조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이고, 최초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는 등 부작용이 생길 우려도 있다"며 "우선 HMM 내부에서 합치된 의견이 먼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재수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이 7월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가진 후 해수부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재수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이 7월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가진 후 해수부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HMM 본사 이전은 단순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만 볼 문제가 아니다. 국가기간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두고 다양한 시선으로 구성원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종합해야 할 문제라는 평가다.

전준수 교수는 "HMM이 대한민국 대표 선사이자 유일한 원양 정기선사인 만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릴 만한 내실을 쌓아야 한다"며 "이대로라면 1년 뒤 불황이 찾아올 때 투자 재원을 막론하고 순식간에 휩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