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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세이집 낸 김혜순 시인 딸 이피 "글과 그림은 한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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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세이집 낸 김혜순 시인 딸 이피 "글과 그림은 한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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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도로시아 태닝 상 탄 현대미술가
첫 에세이집 '이피세世' 14일 출간


현대미술가 이피 작가가 13일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이피세世'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다 제공

현대미술가 이피 작가가 13일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이피세世'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다 제공


"제게 글쓰기와 그림은 하나의 덩어리예요.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잔여물을 긁어모아 쓴 게 (여기 실린) 제 글이죠."

올해 2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현대예술재단(FCA)의 도로시아 태닝 상을 받은 현대미술가 이피(44·이휘재)가 첫 에세이집 '이피세世'를 펴냈다. 13일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그림만 보지 말고 글도 꼭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고려 불화의 선과 색채를 원용한 그의 작품은 왠지 낯설지 않다. 지난달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의 국제문학상을 받은 시인 김혜순의 죽음 3부작을 엮은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표지와 본문의 드로잉이 그의 것. 이피는 김 시인과 극작가 이강백의 딸이다. 그는 "엄마가 책이 나오니 드로잉을 달라고 해서 여느 딸처럼 '아무거나 가져가'라고 한 것"이라며 "협업이라기보단 강제 차출이라고 할 수 있다"고 웃었다.

이피 작가의 드로잉이 실려 있는 김혜순 시인의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표지.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피 작가의 드로잉이 실려 있는 김혜순 시인의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표지. 문학과지성사 제공


여성의 몸을 화두로 하는 그의 작업은 도리 없이 김 시인의 시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 시카고미술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내 피부, 나를 감싸고 있는 껍질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게 됐다"며 "영어도 잘 못하니까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더욱더 껍질 안에 갇히게 됐다"고 했다. '노란' 아시안 여성이라는 자각은 "껍질을 뒤집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번 책의 표지에 실린 '천사의 내부'(2016)가 대표적. 여성의 몸 내부를 색연필과 아크릴 물감, 금가루로 형상화했다. 그는 "생리통이 너무 심했을 때 여성들이 늘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그렸다"고 했다.

그의 세계는 아픔을 동력으로 더 멀리 나아간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가까운 증상을 겪었던 그는 "모든 소리가 너무 잘 들리는 소머즈 같은 초능력을 갖게 됐다"며 "할머니의 고관절에 박았던 나팔관처럼 생긴 나사를 귀에 꽂는 상상을 하고 주파수를 맞추면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색채 감각으로 환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가 생전 오래 계셨던 호스피스에 가보면 아픈 할머니들은 늘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며 "작가로서 아픈 사람을 자처해 창문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했고, 내 그림과 글은 아픈 사람이 보는 창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탰다.

이피세世·이피 지음·난다 발행·348쪽·2만8,000원

이피세世·이피 지음·난다 발행·348쪽·2만8,000원


'이피세世'는 이런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그의 머릿속 형상들을 일종의 자연사 박물관처럼 전시하고 '이피세'라는 시대로 이름 붙였던 2019년 개인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에서 제목을 따왔다. 2010년부터 2022년 사이 그의 내면을 써내려간 글과 작품 도판 113점, 이들 작품에게 보내는 편지가 담겼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