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남 작가의 2009년 작 유화 ‘봄’의 일부분. 노형석 기자 |
전남 완도군 보길도는 예술가의 섬이다. 17세기 문인 윤선도가 숨어 살며 ‘지국총 지국총…’ 후렴구가 달린 시조 ‘어부사시사’를 지은 이래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섬의 바닷가와 산야를 찾아와 영감을 얻어갔다. 전세계 큐레이터의 제왕으로 불렸던 스위스 출신의 거장 하랄트 제만(1933~2005)은 1997년 2회 광주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했다가 보길도 몽돌해변에서 명상하면서 예술혼을 가다듬기도 했다.
서울 화랑가에서 잘나가던 인기 작가였다가 1998년 홀연히 보길도로 들어가 그리기에 정진해온 윤해남(69) 작가 또한 비슷한 도정을 27년째 지속하고 있다. 그가 섬의 자연 속에서 작업하며 길어올린 하늘과 땅, 사람(天地人)의 그림들이 서울 뚝섬역 부근 성수동 거리에서 선보이는 중이다. 정영목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가 지난 5월 개설한 대안적 전시공간 ‘디스코스 온 아트’에 마련된 개인전 ‘표현적 자연: 섬’이다.
전시장 창가 쪽 벽에 붙어있는 2024년 작 ‘무제(반가여래상)’와 2009년 작 ‘숲속의 모녀’. 노형석 기자 |
삐죽이 솟은 산과 깎아지른 해벽과 동굴, 완만한 자갈과 모래 해변이 펼쳐지는 보길도의 풍광이 서양 근현대 회화사 주요 사조들의 특징적 표현들로 제 각기 재해석된 작품들이 나왔다. 세잔의 구축적 구도가 얼비치는 섬의 외형과 바다, 고흐와 보나르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상, 칸딘스키의 추상처럼 물결치거나 쇠라 풍의 점묘가 선연하게 보이는 나무숲 등 한 사람의 필치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화풍들이 출품작들마다 펼쳐져 있다.
서양 회화 사조의 다기한 갈래와 양상들을 섬의 자연을 묘사하는 프리즘처럼 활용하는 조형 실험을 계속 진행하면서 자연에 대한 나름의 심미안을 함께 녹여낸 진행형의 작업으로 볼 수 있겠다. 정영목 교수는 “닫힌 섬의 작가는 매일 우주를 꿈꾼다. 그가 그린 섬은 일상의 자연을 넘어선 지구이자 우주이며 표현의 강도에 따라 ‘신비’와 ‘무게’를 품은 다양한 회화 형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고 평했다. 23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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