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15세 이수희, 17세 한범우… ‘독립 만세’ 외친 이들은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

조선일보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원문보기

15세 이수희, 17세 한범우… ‘독립 만세’ 외친 이들은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

속보
경찰 "쿠팡 한국 임시대표 해롤드 로저스 출국...입국시 출국정지 검토"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이동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80쪽 | 2만원

“이보시오! 당신은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는 것이오? 조선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우리 같이 조선 독립 만세를 부릅시다!”

1919년 3월 27일,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대비해 주민 대상 시국 강연을 했던 원주 군수 오유영은 돌아오는 길목에서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명의 시위대가 태극기를 꺼내고 “만세!”를 외쳤다. 그중 한 명이 함께 만세를 부르자며 군수를 꾸짖었다.

호통을 친 사람은 뜻밖에도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사립학교인 노림의숙을 갓 졸업한 17세 한범우. 헌병이 현장에 출동해 그는 체포됐고, 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속 결의에 찬 모습으로 남았다. 한범우는 석방 석 달 만인 1920년 6월 안타깝게도 옥살이 후유증으로 요절했다.

일제가 만든 감시 대상 인물카드 속 인물들. 왼쪽부터 만세 운동에 참여한 배화학당 여학생 이수희, 원주 노림의숙 졸업생 한범우, 노동 운동가 이효정. 요즘 길에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들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가 만든 감시 대상 인물카드 속 인물들. 왼쪽부터 만세 운동에 참여한 배화학당 여학생 이수희, 원주 노림의숙 졸업생 한범우, 노동 운동가 이효정. 요즘 길에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얼굴들이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구나 안창호 같은 유명인만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6000장의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속에 담긴 40명의 삶을 추적한다. 감시 대상자의 사진과 정보가 담긴 이 카드 속 인물 중 약 4800명이 독립운동 관련자였다. 학생, 교사, 지역 유지, 소작인, 점원, 비정규직 공무원, 주부, ‘에레베타 보이’에서 좀도둑까지, 대부분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1920년 3월 1일 배화학당 여학생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15세 소녀 이수희였다. 일본 순사가 성명과 주소를 쓰라고 하자 이수희는 “쓸 줄 모른다”고 버텼다. 그러면서 어찌 만세를 불렀느냐고 묻자 이렇게 당당히 대답했다. “그렇다 해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없겠는가!” 1930년대 노동 운동에 참여했던 1913년생 이효정은 파업을 주도한 끝에 모진 고문을 받았고, 먼 훗날 여든이 다 돼서야 시집을 내 문학 소녀의 꿈을 이뤘다. 모두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