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부창제과부터 한림수직까지
‘뉴트로' 바람 타고 부활 성공
부창제과부터 한림수직까지
‘뉴트로' 바람 타고 부활 성공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제32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이 디저트를 먹게 될 예정이다. 1963년 경주에서 시작된 ‘부창제과’의 호두과자. 지난달 외교부는 부창제과를 APEC 정상회의 공식 협찬사로 선정하면서 “회의 참가자에게 K디저트를 맛보고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PEC이 1년만 먼저 열렸어도, 하마터면 못 먹을 뻔했다. 이 빵집은 1990년대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 업계에 밀려 문을 닫은 후, 30여 년간 폐점 상태였다. 이를 다시 살린 건 창업자의 외손주 이경원(35)씨다. 외식업에 종사해 온 이씨는 “어머니 댁에 걸려 있던 부창제과 사진을 보면서 언젠가 이 이름을 다시 살리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씨는 서울 서초구에 호두과자점을 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간판을 다시 내건다. 전 국민 간식인 호두과자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녹아든 부창제과는 출시 6개월 만에 호두과자 누적 판매량 1억개, 월매출 15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디저트 업계 최단 기간 매출 신기록을 썼다. 곧 경주에도 매장을 연다.
꺼진 브랜드도 다시 봐야 한다. 시대 흐름에 밀려 사라졌던 브랜드가 ‘뉴트로(new+retro·새로운 복고)’ 열풍을 타고 다시 성공적으로 부활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부창제과의 모습(왼쪽 사진). 사진 속 뒷줄 오른쪽에서 둘째가 창업자 고 권원갑씨. 오른쪽 사진은 지난 4월 부창제과 대전점 개업식 날 줄 선 사람들의 모습. /FG 제공 |
APEC이 1년만 먼저 열렸어도, 하마터면 못 먹을 뻔했다. 이 빵집은 1990년대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 업계에 밀려 문을 닫은 후, 30여 년간 폐점 상태였다. 이를 다시 살린 건 창업자의 외손주 이경원(35)씨다. 외식업에 종사해 온 이씨는 “어머니 댁에 걸려 있던 부창제과 사진을 보면서 언젠가 이 이름을 다시 살리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씨는 서울 서초구에 호두과자점을 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간판을 다시 내건다. 전 국민 간식인 호두과자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녹아든 부창제과는 출시 6개월 만에 호두과자 누적 판매량 1억개, 월매출 15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디저트 업계 최단 기간 매출 신기록을 썼다. 곧 경주에도 매장을 연다.
꺼진 브랜드도 다시 봐야 한다. 시대 흐름에 밀려 사라졌던 브랜드가 ‘뉴트로(new+retro·새로운 복고)’ 열풍을 타고 다시 성공적으로 부활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직접 기른 양의 털을 재래식 베틀로 짜 니트를 만들었던 ‘한림수직’도 그중 하나. 1954년 아일랜드에서 부임해 온 패트릭 맥그린치(1928~2018) 신부가 제주도민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브랜드다. 맥그린치 신부가 양 35마리를 사 오며 제주 한림읍에 성 이시돌 목장을 조성했고, 푸른 눈의 아일랜드 수녀들은 제주 여성들에게 아일랜드 아란섬 전통 꽈배기 문양인 ‘아란 무늬’를 이용한 뜨개질을 가르쳤다. 1970~1980년대엔 근무자만 13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누리며 서울 조선 호텔에도 입점했지만, 2004년 결국 값싼 중국산 양모와 시대 변화에 밀려 문을 닫고 만다. 그랬던 브랜드를 20여 년 만에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성이시돌목장)와 제주 기반 콘텐츠 기업인 재주상회가 되살려낸 것이다. 2021년 다시 태어난 한림수직은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1억원을 모은 후, 매해 완판 신화를 쓰는 중이다.
폴로·몽클레어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이 ‘아란 니트’를 다시 내놓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경력 단절’ 브랜드의 강점인 ‘축적된 세월’을 슬기롭게 활용했다. 과거 이곳에서 일했던 제주 할망(할머니)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전국에서 옛 ‘한림수직’의 스웨터·양모 이불·목도리 등을 기증받아 전시회를 열면서 브랜드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했다. ‘일본에선 빈티지 니트 마니아들이 한림수직 라벨을 찾아다닌다더라’ ‘어머니가 입던 옷을 여전히 입는다’ 등 이 스웨터에 묻은 이야기의 힘에 매료된 소비자가 많았다.
부창제과 역시 마찬가지. 1960년대 당시 신문을 보는 듯한 ‘富昌日報(부창일보)’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부러 한자를 섞어 쓰고 옛 신문의 세로쓰기까지 그대로 인용한 흑백 신문으로 ‘옛것이 주는 새로움’을 제대로 살렸다. 업계에선 신생 브랜드인 부창제과가 APEC 공식 협찬사로 선정된 배경엔 “개최지인 경주를 배경으로 한 이런 스토리가 녹아 있기 때문”이란 평가가 나온다.
1990년 ‘저버 청바지’로 유명했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대표적인 브랜드 부활 사례로 꼽힌다. 2019년 파산 직전까지 갔던 국내 판권을 한국 패션 기업이 사들이며 당시 3억원이던 연 매출을 지난해 1507억원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프랑스 감성의 로고와 브랜드명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2030 여성 맞춤 콘셉트로 변모해 리브랜딩에 성공했다.
최근엔 식품 업계에서도 ‘지나간 식품 다시 보기’ 바람이 거세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전 단종된 제품들이 잇따라 재출시되면서다. 중장년층 소비자는 수십 년 전 맛봤던 제품에서 추억을 떠올리고, 뉴트로 감성에 빠진 1020세대 소비자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단 점을 노렸다.
지난 1월 단종된 지 35년 만에 재출시된 ‘농심라면’은 출시 석 달 만에 판매량이 1000만개를 돌파할 정도로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추억의 광고 카피를 그대로 살려 넣은 게 주효했다.
매일유업은 2016년 단종됐던 ‘피크닉 천도복숭아’를 지난 3월 재출시해 4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팩을 돌파했고, 롯데웰푸드는 롯데삼강 시절인 1987년 출시됐다 단종된 ‘대롱대롱’을 최근 15년 만에 재출시했다. 아는 맛보다 강력한 무기가 없는 셈이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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