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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가 열광하는 작가? 회사서 힘들었던 마음, 그림으로 자유를 주고 싶었다.”

조선일보 마카오=송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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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가 열광하는 작가? 회사서 힘들었던 마음, 그림으로 자유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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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마카오’ 일환 샌즈 차이나 초청 작가 그라플렉스
샌즈 차이나, 유럽·미국·일본·한국 등 유망 작가 9명 초청작 선보여
마카오 미술관과 대형 리조트 중심으로 10월까지 마카오 전역에서 공공 미술 전시
'아트 마카오' 샌즈 차이나 특별전 '도파민, 행복의 원천 크레이그&칼 작가 전시작/샌즈 차이나

'아트 마카오' 샌즈 차이나 특별전 '도파민, 행복의 원천 크레이그&칼 작가 전시작/샌즈 차이나


마카오는 지금 예술 축제가 한창이다. 지난 7월부터 마카오특별행정구 정부가 주최하는 ‘아트 마카오: 마카오 국제 아트 비엔날레 2025’가 마카오 미술관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대형 리조트들도 나서 공공미술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마카오에서 가장 큰 복합 리조트 운영 기업인 샌즈 차이나. 글로벌 리조트 개발업체인 라스베이거스 샌즈의 자회사로, 코타이 스트립에 위치한 베네시안 마카오, 더 플라자 마카오, 파리지앵 마카오, 런더너 마카오 등 다양한 호텔·리조트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샌즈 차이나는 오는 10월까지 열릴 ‘아트 마카오’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미주·유럽·아시아 등 유명 작가 9명을 초청해 특별전 ‘도파민: 행복의 원천 (Dopamine: Fountain of Happiness)’과 병행전 ’경계를 넘어 (Beyond the Frame)‘를 선보이고 있다.

특별전은 미국 대표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를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와 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의적으로 재해석했고, 이와 병행전은 회화, 조각, 설치, 혼합 매체 등 다양한 매체로 틀을 깨며 자신만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작업이다. 그 중 전시 작가로 초청된 그라플렉스(GRAFFLEX·신동진·43)를 전시장 현지에서 만났다.

10월까지 열리는 '아트마카오' 행사 일환인 샌즈 차이나의 특별전과 병행전에 초청된 한국 작가 그라플렉스(신동진)/샌즈 차이나

10월까지 열리는 '아트마카오' 행사 일환인 샌즈 차이나의 특별전과 병행전에 초청된 한국 작가 그라플렉스(신동진)/샌즈 차이나


회화, 공공미술, 아트토이 분야 등에서 활약하는 그라플렉스는 2007년 스트리트 그라피티 스타일로 작업을 시작했다. 만화 이미지와 힙합, 스트리트 문화를 결합한 굵고 검은 선을 사용한 스타일을 구축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발전시켰다. 서울을 비롯해 런던·마드리드·마닐라 등 글로벌 개인전과 80여회 이상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많은 마니아 팬을 모으고 있다.

◇”고자극? 중독? 도파민, 그 희열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가치 있어”

-이번에 마카오에서 전시하게 된 계기는요?


“제가 어렸을 때 세서미 스트리트라는 TV쇼에 많은 영향을 받았었거든요. 7살 때쯤이라 영어를 전혀 이해 못 할 때였는데도 화면 안의 비주얼에 매료되어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 한국에서 세서미 스트리트랑 콜라보레이션을 두 번 진행했었어요. 보통은 회사 쪽에서 저한테 같이 협업하자고 연락이 오는데 그 건은 제가 하고 싶어서 먼저 연락을 했죠. 그때 한 작업을 이번 마카오 전시 기획 쪽에서 세서미 스트리트 주제로 작가를 찾으면서 봤나 봐요. 그래서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 중에 ‘버트’라는 캐릭터를 고른 이유가 있다면? 버트는 진지하고 재미없는 성격인데다 화도 잘 내지 않나요.


“아! 그건 제 친한 친구가 버트랑 정말 많이 닮아서예요(웃음). 외모도 그렇고 성격까지도요. 전 세서미 스트리트하면 바로 그 친구가 생각나요. 어린 시절 제 친구를 떠올리면서 작업을 했죠.”

그라플렉스 작가가 10월까지 열리는 '아트마카오' 행사 일환으로 열리는 샌즈 차이나의 특별전_'도파민, 행복의 원천' 전시작. 세서미 스트리트와 협력 전시로 작가는 '버트'를 신화 속 음악의 신 아폴론으로 형상화했다./샌즈 차이나

그라플렉스 작가가 10월까지 열리는 '아트마카오' 행사 일환으로 열리는 샌즈 차이나의 특별전_'도파민, 행복의 원천' 전시작. 세서미 스트리트와 협력 전시로 작가는 '버트'를 신화 속 음악의 신 아폴론으로 형상화했다./샌즈 차이나


-기존에는 고채도의 작업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이번 버트는 화려한 색을 버리고 석조와 같은 단색을 썼던데요.

“그건 저에겐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기존에 세서미 스트리트와 협업을 했을 때는 두 번 다 컬러풀한 그림들이었죠. 그런데 이번 콘셉트는 올림푸스 신화예요. 제가 힙합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의 신 아폴론과 버트란 캐릭터를 섞으면서 그리스 석상들을 떠올렸죠. 또 이전의 컬러풀한 작업과 다르게 단색으로 만들어서 이번 프로젝트만의 특별함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라플렉스의 '아트마카오' 샌즈 차이나 병행전_경계를 넘어 - 국제 현대 미술 명작전 전시작. 가운데 버트의 색감을 뺀 작품이 눈에 띈다./샌즈 차이나

그라플렉스의 '아트마카오' 샌즈 차이나 병행전_경계를 넘어 - 국제 현대 미술 명작전 전시작. 가운데 버트의 색감을 뺀 작품이 눈에 띈다./샌즈 차이나


-어린 시철 친구가 신(神)으로 승화된 것 같네요. 특별전 제목인 ‘도파민: 행복의 원천’처럼 그 친구분이 자신과 닮은 작품을 보면 도파민이 샘솟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의 도파민은 매운맛이나 고자극 같은 말초적인 것들을 연상케 하거나, ‘중독’ 같은 것으로 귀결되기도 하는데요.

“도파민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희열의 순간을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죠. 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끔 찾아오는 희열의 순간을 더 깊이 만끽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라플렉스에게 행복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쓸데없는 데 쓰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바빠지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렇게 쓸모없이 낭비하는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캐릭터는 나의 서사”

이번 작품전은 키아프 등을 통해서도 국내에도 익숙한 미국의 유명 현대작가 조니 치트우드, 독학으로 연구해 뉴욕 타임스, 구글, 페이스북, 구찌 등과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한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 등을 비롯해 일본의 현대미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준 오손, 중국 현대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젊은 작가 송저우, 마카오 출신으로 아트 마이애미에 참여한 마카오 최초의 여성 작가인 비비 레이, 마카오 미술인 협회 회장이자 예술가·큐레이터·문화 활동가인 록 헤이 등 다양한 국적의 현대 미술작가들로 구성됐다.

그라플렉스는 전시 그 자체도 “교류의 선순환 매개체”라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함께하는 ‘크레이그 & 칼’이나 ‘준 오손’은 이미 알고 있던 작가였고요. 둘 다 한국에 전시했었거든요. 전 관심 있는 작가 전시를 보러 가서 작가와 친구가 되고 그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곤 해요.

그러면서 연결고리가 계속 만들어져요. 이번에 새로 만나게 된 ‘비비 레이’ 는 LA 한인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더라고요. 그렇게 아는 친구의 친구들이 제 친구가 되는 거죠. 그들이 또 한국에서 전시를 하면 찾아가고요. 교류의 선순환이 되는 거에요.”

아트 마카오 Dawn of Apollo (헤이 록). 샌즈 차이나 특별전/샌즈차이나

아트 마카오 Dawn of Apollo (헤이 록). 샌즈 차이나 특별전/샌즈차이나


Fortune Rota Volvitur (일리야 밀스타인)/샌즈차이나

Fortune Rota Volvitur (일리야 밀스타인)/샌즈차이나


A Fable of New Nature (송 저우)/샌즈차이나

A Fable of New Nature (송 저우)/샌즈차이나


'아트 마카오'의 일환으로 '샌즈 차이나'에서 기획한 병행전의 비비 레이 작가 작품/샌즈 차이나

'아트 마카오'의 일환으로 '샌즈 차이나'에서 기획한 병행전의 비비 레이 작가 작품/샌즈 차이나


-어린 시절 만화를 많이 읽었다고 들었는데요.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영향을 받았던 아티스트는요?

“미국 아티스트 ‘키스 해링’과 일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요. 아키라는 제가 맨 처음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였거든요. 드래곤볼, 특히 닥터슬럼프는 지금도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만화예요. 닥터슬럼프를 보면서 만화가를 꿈꾸다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친한 친구의 형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면서 갖고 온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키스 해링’ 화집이었어요.

미술은 되게 지루하고 고루하다 여겼는데 그 생각이 확 바뀌었던 거죠. 키스 해링의 작품은 자유롭고 시대에 대한 반항이 느껴지고, 작가 개인의 이야기도 담고 있고. 이런 것들이 좋았어요. 그 순간이 제가 미술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였던 것 같네요.”

-그라플렉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해서 예를 들어 미국 힙합 그룹 ‘우탱 클랜’ 멤버들처럼 ‘있는 척’하는 이름이 당시에는 너무 멋있었어요. 그 방식을 따라 만든 거죠. 그라피티, 그래픽, 플렉시블(flexible)이란 단어를 섞어서 그라플렉스. 지금은 제 이름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으니까. (웃음)”

-대중이 떠올리는 그라피티는 흔히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이미지인데, 그라플렉스의 작업은 굉장히 정돈돼 있어요. 일정한 선 안을 채운 색이 벗어나는 일 없이 칼각이에요. 상반된 이미지라는 것이죠다. 계획형 인간인가요?

“저는 MBTI J가 아니고 완전 P입니다(웃음).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업을 할 때는 정해진 프로세스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좋아요. 그리고 제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디자이너였잖아요. 제 작업 스타일이 프리 스타일은 아니에요. 정리된 공간에서 정리된 재료를 가지고서 정리되게 그림을 그려야 해요. 제 그림들 90% 정도는 쓰는 컬러도 항상 정해져 있어요.

제 그림엔 텍스처도 없어요. 사실 벽돌이라던가 아니면 시멘트 같은 텍스처 이미지들을 그림 위에 얹으면 그럴듯해져요. 그런데 그런 효과가 저에겐 너무 속임수 같은 거예요. 색감도 예뻐 보이는 세련된 조합이 존재하거든요.

전 그런 그럴듯한 것을 떠난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냥 깔끔한 라인으로만 그림을 그리자. 색도 빨강, 파랑, 노랑을 써서 삼원색끼리 만나는 강렬함만으로 솔직하게 만들어 보자고 생각한 거죠.”

-기교를 배제하고 정면승부를 한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요.”

-병행전 작품을 보면 얼굴이 없거나 얼굴이 있어도 눈코입을 생략해 표정이 없는 시리즈가 있어요.

“작업 중 표정없는 입체 그림들은 3D 그래픽 디자이너였을 당시 게임 만들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그림이에요. 어쩔 수 없이 성적에 맞춰 게임을 전공했고,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게임 회사 일이 그때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루했던 것도 같고.

회사에서 하던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옷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장난감을 만들었고, 음반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전업 미술 작가가 된 것이거든요.

제 작업에 몇 가지 시리즈가 있어요. 이번 전시엔 스마일 얼굴을 캐릭터들과 같이 섞은 시리즈도 있고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와 미키 마우스, 아톰을 그린 것도 있고 약간 입체 모양을 한 것들도 있어요. 거기에는 모든 것, 제가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또 다른 작업 중에 아예 얼굴이 없는 볼드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다양한 캐릭터 디자인도 했었는데, 아티스트로서 제 캐릭터를 구상하면서는 얼굴을 빼버리고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그 당시 제가 원하는 게 자유였던 것 같아요. 캐릭터가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면 사람들이 그 동작에서 연상하는 게 있잖아요. 예를 들어 양팔을 벌리고 서 있으면 미키마우스를, 한쪽 팔을 위로 뻗으면 아톰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동작을 통해서 얼굴 없는 캐릭터가 다양한 캐릭터로 될 수 있는 모습들을 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 한마디로 ‘자유’를 주고 싶었죠.”

-구속 받는 것을 정말 싫어하나 봐요.

“하하, 그런 것 같아요.”

아트 마카오의 그라플렉스. 병행전 앞에서/샌즈 차이나

아트 마카오의 그라플렉스. 병행전 앞에서/샌즈 차이나


'아트 마카오'의 일환으로 '샌즈 차이나'에서 기획한 병행전 작품 앞에선 작가 그라플렉스. /샌즈차이나

'아트 마카오'의 일환으로 '샌즈 차이나'에서 기획한 병행전 작품 앞에선 작가 그라플렉스. /샌즈차이나


◇”상업적? 작품으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M Z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장했다. 국내 최초로 일본의 대표적인 아트 토이 브랜드인 베어브릭(Be@rBrick)과 협업했고, 그 외에도 나이키, 컨버스, 뉴에라, 세서미 스트리트, YG 베어 등 세계적인 브랜드 및 유명 IP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아티스트로 꼽히는데요.

“아마 젊은 층은 저보다 선호하는 다른 작가들이 많아졌을걸요?”

-팬들의 반응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보지 않나요?

“인스타그램 같은 매개체를 통해 반응을 보긴 해요. 작가는 작가활동과 작품 활동이 있어요. 작품 활동은 말 그대로 제가 작품을 하는 거고 작가 활동은 제 그림을 선보이고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알려주고 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 참가는 작가 활동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죠. 해외에 직접 나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는 것들이 중요해요. 그래서 인스타그램 활동이 꼭 필요하죠.

그라플렉스 아트 부산(2019) 참가 작품/그라플렉스 홈페이지

그라플렉스 아트 부산(2019) 참가 작품/그라플렉스 홈페이지


요즘은 채널이 많이 바뀌어서 인스타그램보다 유튜브로 많이 넘어가고 있는 거 같기는 해요. 근데 유튜브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분명하다 보니 아직 시작을 못 했어요. 망설이다 시기를 놓친 것 같아요. 이럴 때 제가 나이 먹고 있음을 느낍니다. (웃음)”

-그래도 도전하려는 욕구가 느껴지긴 하는데요.

“노력하고 있어요. 유튜브 같은 경우에도 시작은 하고 싶었는데, 요즘 유튜브에 너무 진지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뜨고 본인의 경우가 세상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유튜버도 많잖아요. 그런 걸 듣고서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까 봐 너무 조심스러워요. 나서서 이야기해야 할 때는 고민도 정말 많이 해요. 특히 학생들 앞에선.”

-작가로서의 책임감?

“중요하잖아요. 저는 단순히 말 몇 마디한건데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인생이 걸린 일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잖아요. 그런 중요한 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영상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또 걱정되기도 해요.”

대만 타이페이 솔로전(2019)에서의 그라플렉스/그라플렉스 홈페이지

대만 타이페이 솔로전(2019)에서의 그라플렉스/그라플렉스 홈페이지


대만 타이페이 올 더 레이지 전(2018)/그라플렉스 홈페이지

대만 타이페이 올 더 레이지 전(2018)/그라플렉스 홈페이지


-나이키, 삼성, 롯데 등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많이 했어요. 아티스트로서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10~15년 전쯤에 제 개인전을 하고 싶어서 갤러리 관계자들을 만나러 다닌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림이 너무 상업적이다.’ 그 당시 전 상업 활동을 하나도 안 했는데 ‘뭐가 상업적이야?’란 반감이 들었어요. 사실 100억 200억 넘는 초고가의 그림들도 있잖아요. 그게 어떻게 ‘상업적이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나요.

그림 자체는 상업적일 수도 비상업적일 수도 없어요. 그림은 그냥 존재하는 건데. 그림이 어떻게 활용되느냐로 상업적인지 아닌지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좋은 그림일수록 상업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많고요. 제 그림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훨씬 더 의미가 있는 일이 되는 거죠.”

-‘팔리는 작가’, 즉 대중들이 더 선호하는 작가에게 유명 상업 브랜드 측에서 손을 내밀게 된다는 말씀 같은데요. 많은 사람이 먹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림이 산업화해서 기성품처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가 개인의 작업인데요.

“예전에 활짝 웃고 있는 꽃 ‘수퍼플랫 플라워’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타카시’를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스태프 30명 정도를 데리고 왔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상업적이라는 건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미술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고요. 그래야지만 사람들한테 의미가 있는 일이 되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서울관광재단의 서울 공식 아트굿즈 작가 3인으로 선정돼 협업해 선보인 그라플렉스 작가의 아트콜라보라인 출시 기념 포스터 /서울관광재단

최근 서울관광재단의 서울 공식 아트굿즈 작가 3인으로 선정돼 협업해 선보인 그라플렉스 작가의 아트콜라보라인 출시 기념 포스터 /서울관광재단


◇”도파민, 내 안의 틀을 깨다”

-이번 병행전 주제가 ‘경계를 넘어 (Beyond the Frame)’에요. 그 경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흔히 아이디어를 생각할 때 ‘틀을 깨라’고 하잖아요. 틀을 깨려면 전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그 틀부터 보여줘야 해요. ‘틀이 무엇이다’라는 걸 보여주지 못하고 이해시키지 못하면, 뭘 벗어났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고정관념 탈피라는 건 살짝 비틀어서 사용하는 것이지 전혀 다른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탈피를 하려면 고정관념 자체가 있다는 게 전제조건이니까요. 그래서 이번 병행전에서 선보인 일부의 제 컬러풀한 그림이 사실 그 틀인 거예요. 특별전 ‘도파민: 행복의 원천’과 병행전 ‘경계를 넘어서’란 주제를 통해 제 컬러를 다 빼버리고 작품을 만든 것이 결국 제 틀을 깨버린 셈인거죠.”

-작품에 원과 세모, 네모 등 단순한 도형을 많이 사용해요. 사각형에 직선의 추를 달아 중력을 준다는 표현을 했었는데요.

“그 인터뷰는 정말 옛날이었나 본데요. 아마 균형감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균형감을 어떻게 조화하고 파괴하느냐가 또 예술의 출발인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상징도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 도형이잖아요.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동그라미 네모 세모는 그냥 정말 도형일 뿐이죠. 오징어 게임 이전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버튼도 동그라미 세모 네모 엑스로 이루어졌죠. 우리는 도형 이미지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도형은 예술이 생기기 전부터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였고 또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거든요.

제 그림에 대한 설명도 때론 사람들이 오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의 의도와 다른 것들을 느꼈으면 좋겠고 또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했으면 해요. 그림을 그려 공개하기 전까지는 오롯이 제 것이지만 대중에게 보여지는 순간부터는 더이상 제게 속한 게 아니라 그림 자체로 생명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을 통해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음, 예를 들면 미술시간에 이런 그림이 어떤 의미를 지녔다라고 배운 것들은 정작 그 작가가 생각한 게 아닐 가능성이 되게 커요. 작가가 죽고 난 뒤 나중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따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잖아요. 한편으론 그 또한 하나의 생명을 갖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도형이란 형태보다 관객이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는지가 훨씬 중요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해보고 싶은가요.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고 제 삶의 스타일도 바꾸고 있어요. 몇년 전만 해도 저는 운동은 전혀 안하면서 술 마시고 노는 거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제 그림을 바꾸려 하니 제 삶도 바뀌어야 하더라고요. 어릴 때는 아 새로운 그림 그려야지 하면 그냥 다르게 그리려 는 노력을 했거든요. 이젠 그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인풋이 있어야 새로운 아웃풋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국 아티스트로서 하고픈 말은?

“미술을 너무 고가의 사치라고 여기지 않길 바라요. 그냥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하죠. 재미있게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마카오=송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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