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한미 기동훈련은 축소… ‘中·러 한반도 개입’ 가정해 훈련한다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원문보기

한미 기동훈련은 축소… ‘中·러 한반도 개입’ 가정해 훈련한다

서울맑음 / 3.8 °
훈련 절반은 9월로 연기
발표문서 北 언급 사라져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한미 연합 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 기간에 계획됐던 야외 실기동 훈련(FTX) 중 절반 정도가 9월로 연기됐다. 군(軍)은 “폭염”을 이유로 들었지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유화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사령부는 7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연례 한미 연합 훈련 UFS를 오는 18일부터 28일까지 11일 동안 진행한다고 밝혔다. 참여 병력 규모는 한미 모두 예년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극심한 폭염에 따른 훈련 여건의 보장” 등을 종합 검토해, 이 기간 계획했던 40여 건의 야외 실기동 훈련 중 20여 건을 9월로 연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일부 건의에 따라 훈련이) 조정된 것”이라며 “한미 훈련도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28일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다”며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을 문제 삼았다.

7일 경기도 평택시의 주한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치누크(CH-47)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연합뉴스

7일 경기도 평택시의 주한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치누크(CH-47)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가 UFS 일정을 설명하며 내놓은 공동 발표문에서도 ‘북한’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지난해 공동 발표문에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등이 명시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미 ‘중·러의 한반도 개입’ 가정해 훈련한다

올해 UFS 발표문에는 “이번 UFS 연습은 한미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란 말도 포함됐다. 한미가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을 한다는 북한 주장을 의식한 듯한 표현이다. 반면 지난해 UFS 발표문엔 “점증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 GPS 교란, 사이버 공격,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위협” 등이 명시됐다. “특히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대응에 중점”을 둔다고도 했다.

올해 발표문에 ‘북한’ 언급이 전혀 없는 데 대해 합참은 “2024년 발표문에도 북한이라는 단어는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발표문엔 북한의 위협이 명시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합참은 지난해 상반기 ‘자유의 방패(FS)’ 연습 발표문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북한”이란 단어 대신 “북핵 위협”이란 표현이 있었다. 미국 측의 라이언 도널드 한미연합사·주한미군사 공보실장은 “북한이라는 단어가 빠졌어도 북한이 한반도 안보에 주 위협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UFS 기간 실기동 훈련을 일부 연기하는 방안은 지난달 28일 북한 김여정의 대남 담화 이후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 김여정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이재명 정부의 대북 유화책을 열거하면서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고 했다. 김여정은 또 “이재명의 집권 50여 일만 조명해 보더라도 (중략) 한미 동맹에 대한 맹신은 선임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며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을 거론했다. 전임자와 다르다는 인정을 받으려면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라는 듯한 말이다. 그러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는 윤석열 정부와는 다르다”며 훈련 조정을 건의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훈련 연기에 대해 “극심한 폭염”과 “연중 균형된 연합 방위 태세 유지 등”을 종합 검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소식통은 “폭염이라고 훈련을 안 한다는데, 전시에 폭염이라고 작전을 안 하고 쉬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합참은 “연합 연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휘소 연습(CPX)인데 지휘소 연습은 정상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란 말도 했다. 지휘소 연습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하는 워게임(War game) 같은 것이다. 컴퓨터 연습이 중요한데 그것은 예정대로 하니, 실제 한미 병력과 무기를 전개하는 야외 실기동 훈련은 절반쯤 연기해도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주요 한미 연합 훈련이 대부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전환된 문재인 정부 시절, 로버트 에이브럼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야외 기동 훈련 없는 컴퓨터 훈련으로는 연합 방위 능력에 차질이 생긴다”고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직 정부 관계자를 만나 “연합 훈련이 컴퓨터 게임이 돼가는 건 곤란하다” “실전 상황이 되면 군인들이 혼비백산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파병해 실전 경험을 축적 중인데, 우리는 예정된 실기동 훈련마저 미루는 것도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연기된 훈련이 제대로 실시된다는 보장도 없다. 만약 미·북, 남북 대화가 진전되면 아예 훈련이 중지될 수도 있다. 집권 1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협상 상황에서 군사훈련은 부적절하다” “비용이 많이 든다”며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한편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UFS에는 한반도 유사시 북한에 러시아군이 파병되는 등의 상황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북·러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을 고려한 시나리오다. 러시아군이 직접 한반도에 개입하는 상황을 UFS에 반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통상 UFS에 포함된 ‘제3국 개입 방지’ 시나리오와 훈련은 주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날 공동 브리핑에서 도널드 한미연합사·주한미군사 공보실장은 “연합군의 노력은 북한의 위협을 최대한 방어하고 그다음에 한반도 지역에 가해지는 모든 위협에서 한반도를 지켜내는 데 있다”고 했다. ‘모든 위협’이란 중국의 도발 억제 등 인도·태평양 지역 방어까지 염두에 둔 말로 볼 수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많이 보이는데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지 이번 훈련에 접목하고 있다”고 했다.


☞을지 자유의 방패(UFS)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해 매년 8월 중순~말쯤 하는 정례적 한미 연합 훈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소 연습(CPX)과 야외 실기동 훈련(FTX)으로 구성된다.

[양지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