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완벽주의 vs 자유분방…정반대 매력의 두 인어 조연재·김별 [인터뷰]

헤럴드경제 고승희
원문보기

완벽주의 vs 자유분방…정반대 매력의 두 인어 조연재·김별 [인터뷰]

서울맑음 / -3.9 °
13~17일 예술의 전당 ‘인어공주’의 두 주역
너무 잘해도·못해도 안되는 물고기 동작 고심
테크닉보다 감정…감동 주는 공연 하고파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주역을 맡은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주역을 맡은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길이 2m, 폭(한쪽당) 1m. 길어도 너무 길고 넓어도 너무 넓은 바지를 입은 인어공주가 바뜨망(battement·무릎을 편 상태로 힘차게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시작한다. 착각 같은 환상,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두 명의 인어공주는 어찌 됐든 ‘천 조각’인지라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기까지”(김별)가 오래 걸렸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유경험자인 ‘선배 인어’ 조연재도 “연습 기간 내내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일쑤”라며 “마음처럼 100% 움직이지 않고, 단원들과 함께 연습하다 보면 이게 제 꼬리이고 다리인데 자꾸만 밟더라”며 웃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돌아온다. 지난해 막을 올리며 발레계를 설레게 한 현존 최고의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85)의 ‘인어공주’다. 노이마이어는 이번 작품을 통해 국립발레단과 처음 만났다.

올해 무대에선 지난해에 이어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조연재(30)와 김별(22)이 인어공주를 맡았다. 조연재는 노이마이어가 한국에서 찾은 새로운 뮤즈다. 그는 ‘인어공주’,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주역을 맡으며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김별은 앞서 ‘인어공주’에서 인어 자매로,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마농으로 출연하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조연재와 김별은 “사람이 아닌 존재를 표현한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라며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오면 더 재밌는 작품이 ‘인어공주’”라고 했다.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의 ‘인어공주’에서 주역을 맡은 국립발레단 코르드발레 김별,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의 ‘인어공주’에서 주역을 맡은 국립발레단 코르드발레 김별,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너무 잘해도 못해도 안 되는 물고기 동작…‘니모를 찾아서’ 보고 탐구

‘인어공주’는 주역을 맡은 두 무용수에게 움직임을 위한 기술은 기본, ‘드라마 발레’를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감정 표현도 요구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덴마크 극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원작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은 2005년 탄생 200주년을 맞아 로열 덴마크 발레단이 노이마이어에게 의뢰, 그해 4월 코펜하겐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했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에 ‘동성 연인’을 사랑했던 안데르센의 자전적 삶을 반영해 ‘금지된 사랑’의 비극을 그려냈다.

조연재는 “움직임도,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도 이런 작품은 처음”이라며 “이렇게 공연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작업 과정도 달랐다”고 말했다. ‘백조의 호수’, ‘지젤’ 등 고전 발레에 익숙했던 그는 ‘인어공주’를 통해 드라마 발레를 처음 만났고, ‘카멜리아 레이디’를 통해 ‘드라마 발레’ 퀸으로 거듭났다.


그는 “‘인어공주’는 화려한 기술보다 감정이 중심이 된 작품”이라며 “동작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그 위로 감정을 입혀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연 연습 당시 노이마이어 안무가가 강조한 것은 “인위적 연기가 아닌 무용수 스스로가 상황 속에 뛰어들어 자연스럽게 감정을 끌어내라”는 것이었다. 현장에서도 노이마이어는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설명하며 무용수들의 감정을 유도했다. 김별은 ‘인어공주’에 대해 “물고기인데, 물고기 중에서도 감정이 아주 풍부한 물고기”라며 웃었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제공]



‘반인반수’ 인어를 완성하기 위한 고군분투는 일상에서도 이어졌다. ‘물고기’ 인어를 표현하는 팔동작은 클래식 발레가 요구하는 몸짓과 완전히 달랐다. 우아한 발레리나의 선 대신 잔근육이 도드라지는 동물의 몸짓으로 폴 드 브라(port de bras·발레에서의 팔동작)를 완성한다. 무용수들에게 ‘백조의 호수’처럼 팔꿈치를 먼저 움직이는 동그란 팔동작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동작을 요구했다.

“인어는 새가 아니니, 옆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습관처럼 나오는 동작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본 연습 들어가기 전부터 사전 연습을 엄청나게 했더니 도리어 물속에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또 지적받았어요. (웃음)” (조연재)


‘적정선’의 폴 드 브라를 찾는 것이 두 사람의 과제였다. “너무 잘해도, 너무 못해도 안 된다”는 어정쩡한 미션이 떨어진 것이다. 김별은 “동작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물속에서의 저항을 생생히 느끼려고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손동작을 연습했다”고 한다. 선배 인어 조연재도 물고기 영상 탐독에 시간을 쏟았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는 김별의 ‘인어’ 예습 영상 중 하나였다. 그는 “물고기들이 일정하게 같은 속도로 헤엄치지 않더라”며 “더 빠르게 움직이거나 느리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디테일을 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인어가 다리를 갖게 되는 장면도 압권이다. 이 순간을 위해 김별은 “갓 태어난 송아지 영상을 찾아보며 걷는 동작을 연습했다”고 귀띔했다.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의 ‘인어공주’를 통해 첫 주역을 맡은 김별 [국립발레단 제공]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의 ‘인어공주’를 통해 첫 주역을 맡은 김별 [국립발레단 제공]



완벽주의 조연재 vs 자유분방 김별…완전히 다른 두 인어
두 인어공주는 두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완전히 다르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1시간 발레와 운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완벽주의자’ 조연재와 달리 ‘칼퇴’와 ‘아침잠’이 소중한 자유분방한 김별의 성격은 무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두 사람은 모두 초등학교 2학년 때 발레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탓에 발레를 마음에만 품었던 조연재는 보통의 여성 무용수와 달리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전공자의 길을 걸었다. 발레 시작 1년 만에 세종대 무용과에 입학했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해선 코르드발레(군무) 시절부터 주역을 꿰찼다. 김별은 “여자 무용수가 이렇게 늦게 시작해 잘 되는 것도 흔치 않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물론 쉽게 이룬 성과는 아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유산소 운동을 시작으로 출근과 동시에 리허설을 하고 퇴근 이후 남아 8시까지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한다. “이상적인 발레리나의 몸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김별은 “리허설에서 언니가 연습이 안 돼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어떤 작품이든 본인의 것으로 만드며 노력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했다.

“단 1분도 궁둥이를 붙이지 못하는 까불이”였던 김별에게 발레는 그저 지루하고 재미없는 세계였다. 그러다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선 뒤 완전히 빠졌다. 열한 살부터 발레를 전공, 왜소하고 작았던 소녀는 어느덧 172㎝까지 성장해 국립발레단에 입단(2021년)했다. 코르드발레로 활동하며 주역 자리를 꿰찬 김별에겐 지금 “너무나 잘하고 싶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조연재는 “(김)별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정과 동작이 이름처럼 빛이 난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타고난 끼를 가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개막을 앞둔 두 주역의 어깨가 무겁다.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 국립발레단의 인기 초연작이라는 부담도 있지만, 오늘도 올곧게 자신의 길을 간다.

“늘 완벽해지고 싶은데 사람인지라 늘 완벽할 순 없더라고요. 정체된 것이 아니라 오늘 오르는 이 공연에서부터 한 걸음씩 발전해 있는 모습을 보이는 무용수이고 싶어요.” (조연재) “기술이나 동작을 잘 수행하는 무용수이기보다 진심을 전하는 무용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