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 후 10년
현지서 韓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공연
새로운 세상·자유 갈망하는 민초 이야기
현지서 韓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 공연
새로운 세상·자유 갈망하는 민초 이야기
2015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한 ‘미스 사이공’의 대체 배우로 데뷔, 메인 캐스팅까지 따냈던 배우 김수하가 10년 만에 K-뮤지컬을 들고 다시 웨스트엔드로 향한다. [PL엔터테인먼트 제공] |
“‘안녕하세요. 김수하입니다. 영국에서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해 한국으로 돌아와 ‘레 미제라블’ ‘아이다’ ‘하데스타운’을에 출연했고, 지금 이 작품과 함께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어요’ 이 말을 한국어로 할 생각이에요.”
영어 한 마디 못 했던 스물한 살 무명의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 국내 무대에서 데뷔도 하기도 전에 뮤지컬의 본고장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로 향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킴 역할의 커버(대체 배우)를 맡아 앙상블로 시작, 메인 캐스팅까지 꿰찼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재입성한다. 이를테면 ‘금의환향’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순수 토종 ‘K-뮤지컬’을 들고 간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수하는 “영어로 섰던 무대에서 한국어 공연을 한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며 벅차 했다.
김수하는 한국 데뷔작 격인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을 들고 다음달 9일(한국시간) 웨스트엔드 질리언린 시어터로 향한다. 170분의 국내 버전을 100분으로 축약한 ‘스웨그 에이지 인 콘서트’라는 제목으로다. 영국에서 공연은 분량을 줄이고 무대를 간소화했을 뿐, 현재 관객과 만나고 있는 뮤지컬과 다르지 않다.
김수하의 ‘영국 데뷔기’는 만만치 않았다. 모든 게 어려웠다. 기본적인 ‘말’부터 통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다니다 영국으로 향한 그에게 ‘언어’는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왔다.
“오디션 현장에 있던 영국 연출가와 아예 대화가 안 될 정도였어요. 그런데 공연 연습하면서 연출가와 계속 대화를 하다 보니 마치 아빠처럼 그분의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세 시간에 달하는 공연의 모든 노래 가사는 통째로 외웠다. 통역사, 발음 교정 코치, 보컬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트레이닝했던 웨스트엔드 데뷔기를 돌아보며 그는 “혼자 모든 걸 해냈지만,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기에 돈을 받고 공연한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주급의 절반 이상을 쓴 ‘한식’은 그가 다시 힘을 내게 한 원동력이었다.
힘들게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김수하는 웨스트엔드 재입성 무대에서 “오기를 좀 부려봤다”고 했다. 뮤지컬 시작 전 ‘소개 멘트’ 때문이다.
“‘영국에 왔다고 꼭 영어를 해야 하나, 한국어로 할 테니 이젠 (너희들이) 한국어로 들어라’는 생각으로 한국어로 (소개)하기로 했어요. (웃음) 영어로 처음 섰던 무대에서 한국어로 공연한다는 것이 사실 지금도 상상이 안 가요.”
그는 “영어 자막이 실시간으로 제공돼 현지 관객들도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것 같다”며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외치는 데서 오는 에너지가 충분히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와 만난 작품이 바로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이었다. ‘미스 사이공’ 투어 공연 차 스위스에 있을 당시 현 소속사이자 이 작품의 제작사인 PL엔터테인먼트의 송혜선 대표가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날아갔다. 김수하가 무대에 선 모습은 보지도 못했지만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을 제작한 스타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의 안목을 믿고 새 얼굴을 발탁한 것이다.
뮤지컬은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된 ‘가상의 나라’ 조선에서 시조를 읊으며 새로운 세상과 자유를 갈망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김수하는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며 나의 길을 찾아가는 강단 있고 어른스러운 진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2020년 한국뮤지컬어워즈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는 “백지상태에서 쇼케이스 버전으로 초연에 올랐을 때와 6년간 다섯 시즌을 함께 한 지금 작품과 캐릭터는 완전히 다르다”며 “매 시즌 항상 같은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고,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다 보니 이번에도 다른 진을 내보이고 있다”고 했다. 김수하는 초연 때부터 함께 한 배우 양희준과 함께 이 뮤지컬을 이끄는 터줏대감이다. 그러기에 그는 “무엇보다 책임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뮤지컬의 배경과 소재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K-컬처의 인기로 한국적 요소가 ‘신의 한 수’가 된 시대이긴 해도 사극 배경의 ‘시조’ 소재는 웨스트엔드 관객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송 대표는 “웨스트엔드 관계자들은 계층 간의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말했다. 송 대표의 이야기에 김수하도 한마디 보탰다.
“요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갓이 인기잖아요. 우리 작품엔 진짜 갓과 개량 한복이 나와요. 게다가 힙합 장르에 맞춰 랩을 하듯 시조를 읊는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이기도 해요. ‘케데헌’ 이상으로 전통과 현대를 섞은 한국 고유의 감각을 보여줄 수 있어요.”
뮤지컬 걸음마를 뗐던 웨스트엔드로 다시 향하는 그는 지금 국가대표가 된 심경이다. 김수하는 “영국에서 보낸 4년은 나를 성장하게 한 시간이었다. 영상에서나 보던 배우와 엔지니어가 제게 ‘우린 이제 동료’라고 이야기하던 감동을 기억한다”며 “태극기를 두르고 공연하는 마음으로 무대에 설 생각”이라고 했다.
“뮤지컬에 ‘태산을 넘어 세상을 향해 외쳐주세요’라는 대사가 있어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 산을 극복해 가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어요. 한국 창작 뮤지컬인 이 작품이 세계 무대에 서며 우리 배우들의 재능도 인정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고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