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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복제·변형 … 디지털시대 원본 의미 찾는 회화

매일경제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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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복제·변형 … 디지털시대 원본 의미 찾는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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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Prototype'(2025).  롯데문화재단

옥승철 'Prototype'(2025). 롯데문화재단


한 사람이 고개를 돌린 채 어딘가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눈동자는 없다. 언젠가 가상 세계에서 마주했던 것 같은 익숙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낯설다. 옥승철 작가의 'Prototype'(2025)이다.

롯데문화재단은 옥승철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프로토타입 PROTOTYPE'을 오는 15일부터 10월 26일까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 사람들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탐구해온 작가의 회화, 조각 등 시기별 주요 대표작 80여 점을 펼친다.

프로토타입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의 형태(원본)' 또는 '전형적인 예'다. 하지만 옥 작가는 이미지의 복제와 변형이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원본의 개념이 더 이상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시명의 프로토타입은 하나의 고정된 원형이 아니라 언제든 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인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를 상징한다.

옥 작가의 작품은 전통 매체와 디지털 이미지의 경계에 있다. 언뜻 이미지만 봐서는 디지털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미지를 구현한 방식은 회화, 조각 등 아날로그적인 기법을 따른다. 만화, 영화, 게임 등 시각 매체 안에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변주된 디지털 이미지를 원본 삼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특히 그의 회화는 이런 이미지들의 불안정하고 미결정적인 상태를 드러내는 창구다. 화면엔 만화적으로 그려진 인물의 두상이 등장하는데, 눈동자가 생략돼 있거나 하나같이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국적이나 성별도 불분명하다. 이미지의 반복과 중첩, 소거와 재등장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을 뿐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상대적으로 쉽게 제작되는 가벼운 이미지(디지털 원본)와 노동 집약적으로 완성되는 무거운 이미지(미술 작품)가 교차하는 아이러니를 만들면서 원본성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한다.

일례로 출품작 'Player'(2022)는 직접적으로 게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사람인지,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인지 알 수 없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벡터 좌표에서 출발해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전통 매체를 통해 실제 현실 세계로 출력돼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트로피나 두상 조각 같은 그의 입체 조형 작업도 마찬가지다. 조각을 이루는 이미지는 언제든 치환 가능한 형상으로 다양한 스케일과 형태로 공간에 배치된다.

롯데문화재단 관계자는 "복제, 유통이 일상화된 현대 이미지의 순환 구조 속에서 고정된 해석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감각되는지 보여 주는 이번 전시는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열린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출생의 옥승철 작가는 중앙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 파르코뮤지엄(2024), 스페인 발렌시아 투스데이 투 프라이데이(2024), 아트선재센터(2022)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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