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광역청년센터 커뮤니티 광장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의 ‘찾아가는 전세사기 예방교육’에서 참가자들이 전세사기 예방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 ‘레비오사’를 즐기고 있다. 이지혜 기자 |
“매매가가 2억원인데 전세 보증금이 3억원이래요. 이 집에 쫄깃쫄깃한 마음으로 살아보고 싶다, 손들어보세요.”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광역청년센터 커뮤니티 광장에 모인 청년 40여명은 사회자의 농담 섞인 질문에 웃음을 터트렸다. 손을 든 사람은 다행히 한 명도 없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과 함께 ‘찾아가는 전세사기 예방교육’을 열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전세계약 기초 강의와 전세사기 예방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을 진행했다. 강의를 통해 전세계약의 구조, 유의 사항 등을 익힌 뒤 보드게임을 통해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수순이었다.
청년들은 사기당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을 안고 교육에 참여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온 직장인 ㄱ(34)씨는 아예 자신의 오피스텔 전세계약서를 들고 왔다. “요즘 전세사기가 너무 많은데 혹시 제가 놓친 게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왔어요.” ㄱ씨는 “다행히 사기 위험은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인천대학교와 교육 콘텐츠 기업 프리하라가 만든 보드게임 ‘레비오사’(한국부동산원 캐릭터인 ‘레비’와 함께 ‘오’늘부터 ‘사’기 피해 예방)는 게임 참가자가 전세계약을 맺는 세입자가 되어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을 게임화했다. 주사위를 굴려 게임판 위 말을 옮기면, 부동산 정보 포털, 등기소, 세무서, 보증기관 등 전세계약을 할 때 꼭 방문해야 할 기관에 도착해 관련 정보를 얻는 방식이다.
게임 참가자들은 계약 전, 계약 중, 계약 후로 나뉜 챕터를 순차적으로 거치면서 전세계약 때 꼭 확인해야 할 정보를 모아야 한다. 각 챕터에서 확인해야 할 정보를 하나라도 놓치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없다. 계약에 필요한 14개 체크리스트를 모두 확인하면 게임은 끝난다. 청년들은 이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광역청년센터 커뮤니티 광장에서 국토교통부가 한국부동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과 함께 ‘찾아가는 전세사기 예방교육’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교육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
주사위가 또르르. 말이 ‘세무서’ 칸에 멈췄다. 곧장 질문이 터져 나왔다.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세무서에 왜 가지?” 카드를 뒤집어 내용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바로 해소된다. “임대인이 미납한 세금이 있을 경우, 보증금 전액 반환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체납 여부를 확인하세요. 임대인 동의 필요!” 청년들은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체크리스트를 표시했다.
‘온라인부동산 정보 포털’ 칸에서는 들어가려는 집의 적정 매매가와 전셋값 시세 차이를 확인했고, 그 다음엔 ‘현장 확인’ 칸에 도착해 무허가·불법 건축물 여부를 확인했다. 보드게임의 카드가 하나씩 뒤집힐 때마다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고 청년들은 연신 필기에 열중했다.
어느새 게임이 ‘계약 후’ 단계에 접어들었다. “찾았다! 기억의 조각 카드!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 설정 등의 변동사항, 없음.” “(집주인이) 계약하고서 바로 대출하러 달려가는 나쁜 짓을 안 했다는 거죠?” 게임이 막판에 이르자 어려운 부동산 관련 용어를 풀어 말할 정도로 청년들의 관련 제도 이해도가 부쩍 높아졌다.
서울 은평구에서 온 직장인 박함윗(32)씨는 게임 자체를 즐겼다고 말했다. “게임 진짜 재밌었어요. 구성이 단순하면서도 내용 숙지가 안 되면 넘어갈 수가 없거든요. 임대인 세금 체납이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확인 같은 게 확실히 머리에 들어와서 이젠 안 까먹을 것 같아요.”
조만간 전세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는 최아무개(32)씨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계약 단계에서 확인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서 다 숙지하기가 힘들잖아요. 그걸 게임에서 계약 전과 계약 중, 계약 후로 나눠서 보니까 접근하기 쉬웠어요.”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광역청년센터 커뮤니티 광장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의 ‘찾아가는 전세사기 예방교육’에서 참가자들이 게임 뒤 열린 ‘전세사기 예방 오엑스(OX) 퀴즈’에 임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
30여분 진행된 게임이 끝난 뒤엔 ‘전세사기 예방 오엑스(OX) 퀴즈’로 앞서 강의와 보드게임을 통해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전입 후 14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하여야 한다. 전입신고 당일 대항력이 발생하므로, 되도록 신속하게 신고하는 것이 보증금 반환에 유리하다. 정답은 무엇일까요?” 청년들은 각자 휴대폰과 연결된 화면에서 답을 골랐다. “정답은 엑스였습니다! (대항력은) 전입 신고 당일이 아니라 다음날 발생하죠.” 정답을 고른 참가자들이 환호했다.
약 2시간30분 동안의 교육과 게임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퀴즈에서 1등을 차지한 정아무개(34)씨는 “보증금이 매매가의 80%가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오늘 가서 제가 살고 있는 집 매매가부터 알아보려고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서울 용산구의 빌라에 보증금 1억4천만원 전세를 살고 있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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