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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인형 2개만 사줘라"…트럼프의 예언 현실이 됐다

이데일리 정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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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인형 2개만 사줘라"…트럼프의 예언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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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경제불확실성에 美소비자 지출 줄여
필수품만 찾는 '가성비' 구매로 선회
트럼프 행정부, 관세수입 일부 환급도 '검토'
4월 10일,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시에 위치한 이우 국제무역시장의 한 상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형상화한 장난감이 전시돼 있다(사진=AFP)

4월 10일,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시에 위치한 이우 국제무역시장의 한 상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형상화한 장난감이 전시돼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어린이들이 인형 30개 대신 2개만 받을 수도 있고, 그 2개가 평소보다 몇 달러 비쌀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굳이 무리해야 할 건 없습니다.”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 미국 내 물가가 올라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선물사주기도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한 발언이다. 그 발언이 2025년 여름,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팬데믹 이후 쾌속 질주하던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행태가 인플레이션, 고금리, 관세, 경기 불확실성 등 복합적 요인 속에 가성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3일(현지시간) 밝혔다.

구독서비스 해지하고 필요한 물건만 꼭 사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건축가 케빈 어빈 켈리는 외식, 여행 등 모든 소비 항목에서 지출을 줄였다. 그것은 딸을 위한 선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딸이 스머프 가방을 원했지만 ‘안 된다’고 했고, 작년 쓰던 가방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아이 생일파티 초대장에서 ‘선물은 사양’이라는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켈리는 “‘에라 모르겠다’(What the heck)하고 지르던 소비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이제는 확실히 꼭 필요하고 품질이 보장된 물건만 산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예술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대학을 다니는 첼시 홀린스(26)는 배달플랫폼인 도어대시 구독을 해지하고, 소매판매점인 달러제너럴과 월그린스의 쿠폰 앱을 내려받아 할인 정보를 비교하고 있다. 그는 “예전엔 쿠폰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필수”라고 말했다.

마케팅 이사인 아만다 베르디노(39) 역시 각종 구독 서비스를 정리했다. 그는 “로켓머니(개인재무관리 어플리케이션)으로 자동 결제 목록을 정리한 결과, 이미 창고에 쌓인 물건이 많은데도 정기 구매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젠 정말 필요한 것만 산다”고 말했다.


치폴레, 프록터앤갬블(P&G), 크로거 등 대형 소비재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몬델리즈 인터내셔널의 더크 반 더 푸트 CEO는 “소비자 불안이 눈에 띄게 커졌다”며 “전 세계 간식 판매는 증가했지만, 미국 내 매출은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안드레 슐텐 P&G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소비가 줄고 있다. 소비 둔화 추세는 일관된다”고 말했다. 존 몰러 P&G CEO는 “미국 소비자들이 대량 구매나 소형 포장 제품을 선호하며 ‘가치 소비’를 추구하고 있다”며 “이민 정책, 인플레이션, 관세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새로운 소비 행태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과 교정기 제조사인 인비절라인은 “소비자들이 투명 교정기를 미루거나 금속 교정기로 대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돈 걱정 늘어난 미국인들…美경제 주축 무너지나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 변화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있다. 소고기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커피에는 50%에 달하는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포드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담으로 일부 차량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실(TBL)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이후 미국의 평균 유효관세율은 2.5%에서 7개월 만에 18.3%로 올랐다.

식료품과 일상용품 가격 상승, 향후 경기 및 고용 전망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의 돈 걱정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미국 퇴직연금 기업 임파워가 지난 6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은 하루 평균 4시간을 ‘돈 걱정’에 쓰고 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작년보다 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70%이다. 만약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다면 미국의 경제성장의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가 발표한 6월 실질 소비지출은 0.1% 증가해 전달 감소 이후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약한 수준으로 보였다. 특히 자동차 등 내구재 지출은 3개월 연속 감소하며 2021년 이후 가장 긴 하락세를 기록했다. 서비스 지출 증가도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지난 1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미국 비농업 일자리가 시장 전망치(10만명)를 크게 밑돌며 고용 충격까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수입의 일부를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환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관세정책으로 관련 세수가 2배(1520억달러·211조원) 늘어난 만큼 이를 피해를 본 미국국민에게 되돌려줘 관세정책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미국 부채 규모가 미국 경제규모를 넘어선 상황에서 이 관세수입을 먼저 부채를 갚는데 써야 한다는 공화당 내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이 구상안이 실현될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