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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원태인, 후배들 '지갑' 된 사연…"이승현·김영웅·이재현까지, 말도 마세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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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별안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됐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삼성 라이온즈 선발 에이스 원태인(24)은 최근 후배 투수 이승현(22)과 한 가지 내기를 했다. 올해 프로 4년 차로 첫 풀타임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이승현이 규정이닝(144이닝)을 달성하면 명품 가방을 사주기로 했다. 이후 이승현의 마음이 바뀌어 품목이 겨울 패딩이 됐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이승현은 "내가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며 "(원)태인이 형이 돈을 많이 벌지 않나. 선한 영향력이라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 올 시즌 원태인의 연봉은 4억3000만원, 이승현은 7000만원이다.

원태인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알고 보니 이승현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내야수 김영웅(21), 이재현(21) 등도 줄을 섰다. 원태인은 "애들이 나만 보면 '형 저는 왜 내기 안 해줘요?', '저한텐 왜 안 걸어줘요?'라고 한다. (김)영웅이에겐 이미 현금을 뜯겼다. (이)재현이도 곧 조건을 달성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이종열) 단장님께서 나무 대신 숲을 보라고 하셨다. 팀이 잘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며 "큰손으로서 삼성 라이온즈라는 팀에 투자하고 있다. 사실 애들이 잘하면 나도 정말 기쁘다. 그래서 웬만하면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후배들의 보답은 없을까. 이승현에게 본인이 선물하는 것으로 내기를 하나 걸어보라고 권유하자 "태인이 형은 뭘 걸든 다 해낼 것 같다. 그래서 말을 못 하겠다"며 딴청을 피웠다.

다음은 원태인, 이승현과의 일문일답.

-둘이 내기를 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이승현
: 내가 하자고 했다. 하나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형이 돈을 많이 벌지 않나. 후배들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을 듯해 말한 것이다.

-규정이닝을 채우면 명품 가방을 받기로 했는데, 다시 겨울 패딩으로 바꿨다고 들었다.
▲이승현
: (시즌을 마치면) 겨울이라 패딩으로 정했다. 물론 겨울옷은 있지만 예쁜 패딩이 있으면 하나 사달라고 할 것이다.
▲원태인: 요즘 다른 애들이 나만 보면 '형 저는 왜 내기 안 해줘요?', '저한텐 왜 선물 안 걸어줘요?'라고 물어본다. 단장님께서 나무 대신 숲을 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라는 팀에 투자를 하고 있다. 팀이 잘하면 좋은 것 아닌가. 큰손으로서 투자하면 다 내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또, 애들이 잘하면 나도 정말 기쁘다. 웬만하면 해달라는 것 다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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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외에 다른 선수들은 어떤 조건을 걸었나.
▲원태인
: 영웅이가 130타수 안에 홈런 3개를 친다고 했다. 그런데 한 50타수 만에 해내더라(20일 기준 170타수 11홈런 기록 중). 그래서 현금을 뜯겼다. 재현이는 130타수 내에 홈런 5개를 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112타수인데) 4홈런이라 1개 남았다. 얘는 비싼 헤드셋을 사달라고 하더라.

-이재현도 억대 연봉자인데(1억4000만원).
▲원태인
: 내 말이 그 말이다. 작년 겨울부터 뜬금없이 '뭐 안 사줘요?'라고 하더라. 갑자기 '형 저 신발 안 사줘요?'라며 명품 신발을 사달라고 했다. 내가 '오잉?', '엥?' 등의 반응을 보이자 올해 스프링캠프 때 헤드셋으로 바꿨다. 그러더니 혼자 '오케이, 한 발 물러날게요. 내기 걸어줘요'라고 하길래 그냥 알았다고 했다.

(이)승현이는 라커룸에서 바로 옆자리를 쓰는데 '형 저도 내기 걸어주세요'라고 해서 그냥 규정이닝으로 정해준 것이다.

▲이승현: 나도 영웅이에게 소고기 한 번 사주기로 했다. 요즘 너무 잘하고, 내가 등판한 날도 잘 쳐줘 고마워서다.

▲원태인: 장어를 사줬는데 홈런을 쳐주니 기분 좋더라. 그래서 자꾸 해주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애들이 내가 등판한 날 평범한 안타 하나 치고도 '뭐 안 사줘요?'라고 한다. 무난한 내야 땅볼을 처리하고도 그런다. 진짜 물주가 돼버렸다. 나도 형들에게 정말 많이 얻어먹었기 때문에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쓰고 있다.

-이승현은 원태인에게 내기를 걸어 해주고 싶은 것 없나.
▲이승현
: 뭘 걸든 다 해낼 것 같다. 그래서 말을 못 하겠다. 솔직히 형은 너무 잘한다.

-평소 원태인의 투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승현
: 진짜 멋지다. 타자들에게 맞을 것 같지 않다. 위기 상황도 잘 막아낸다. 솔직히 정말 잘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원태인: 영혼 없는 거 다 보인다.
▲이승현: 진짜 진심이다.

-원태인에게 배우거나 물어보고 싶은 것은.
▲이승현
: 많다. 난 1~2회에 늘 투구 수가 많은데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형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 형이 운동하는 것도 옆에서 관찰하는 중이다. 예전에 체인지업에 관해 열심히 물어봤는데, 그때 형이 알려준 것을 바탕으로 요즘 체인지업을 계속 구사하고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바꿔가며 던지니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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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인은 올해 발전한 이승현의 투구를 보면 어떤가.
▲원태인
: 엄청 기특하다. 선발투수가 하고 싶어 스스로 보직을 바꿨는데 그만큼 준비를 잘한 것 같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많이 아쉬웠다. 중학교 때부터 봐온 결과 좋은 재목인데 능력을 펼치지 못했다. 그래서 옆에서 잔소리를 많이 했다. 이제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하는 듯하다. 자리 뺏기지 않게 잘했으면 좋겠다.

-이승현이 등판한 경기 도중 원태인이 조언해 주는 모습도 봤다.
▲원태인
: 맞다. 귀담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벤치에서 보며 느낀 점들을 한 번씩 말해준다. 경기가 팽팽하게 이어지다 타선의 득점 지원으로 점수 차가 벌어지면, 투수의 집중력은 다소 떨어진다. 타자들이 점수를 내준 뒤 다음 이닝에 흔들리곤 한다. 그래서 홈런 맞더라도 스트라이크 던질 수 있는 공, 자신 있는 공으로 피하지 말고 공격적으로 승부하라고 했다. 하지만 바로 볼넷을 허용하더라.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은 것이다. 실망했다.

▲이승현: 아니다. 잘 들었는데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간 것이다.

-지금의 이승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궁금하다.
▲원태인
: 생각보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장하는 데 오래 걸린 것 같다. 데뷔 시즌 첫 등판의 강렬함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제 선발투수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까지 왔다. 욕심내지 말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첫 두 시즌은 성적이 안 좋았지만 부상 없이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다 보니 그 시간이 밑거름이 됐다.

지금 승현이는 정말 잘 던지고 있다. 더 잘하려 하지 말고, 부담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늘 말했듯 부담감은 내가 안겠다. 승현이나 (이)호성이 등 후배들은 그냥 편하게 투구했으면 한다.

▲이승현: 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이승현
: 아, 이런 거 잘 못한다. 진짜 못한다. 솔직히 형을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언제 밥 한 번 사주셨으면 한다.
▲원태인: 무엇이든 물어보면 다 말해줄 것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왔으면 한다. 근데 내 자리 뺏기면 안 되는데.
▲이승현: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 하지만 형에게 닿기엔 너무 멀다. 형은 저 위에 있다.

사진=최원영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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