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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졸업’ 정려원, ‘주인공입네’하는 에고 감춘 생활 연기 일품 [김재동의 나무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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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아이러니’

11일 방송을 시작한 tvN 새 토일드라마 ‘졸업’(극본 박경화, 연출 안판석)이 선보인 영리한 문제 제기 방식이다.

사교육시장의 대명사 대치동 학원강사들의 삶과 사랑을 조명하겠다는 기획의도를 내세우고 막을 올린 이 드라마는 로맨스물답지 않게 은연중에 깔린 주요 인물들의 자괴감을 바닥에 깔고 시작했다.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대치체이스 학원 국어과 1타강사 서혜진(정려원 분)은 후배강사 김채윤(안현호 분)의 학부모 상담교육을 하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만들어주세요. 1등급.” 학부모로 분한 서혜진이 막무가내로 김채윤을 압박한다. 상담스킬이 부족한 김채윤은 추천도서리스트를 권한다. 서혜진이 묻는다. “독서활동이 학생부 평가항목에서 빠졌는데도 김채윤 선생은 책을 더 읽히라고 대답을 하겠다? 스승이라도 될 생각은 아니죠?”

그리고 조언한다. “어려운 내용, 복잡한 선지, 방대한 연계지문 이런 걸 뚫고 1등급을 차지하는 비결이 지식이나 교양, 상식 이런 거라면 우리 같은 사람은 필요가 없지. 창의적인 주입식 교육과 훈련의 힘을 믿게 해야죠. 애들 좋은 대학 가는 게 우리 보람이고 긍지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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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은 스스로 가르치긴 하지만 스승이 아니며 '우리같은 사람'은 좋은 대학 진입 길라잡이 역할에 보람과 긍지를 느낄 뿐이라고 단정한다.

바로 뒤이은 장면에선 새로 부임한 국어교사로 골머리를 앓는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학교 시험은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담당하잖아요.” 학생들은 선생님을 존경해야 된다. 왜? 시험출제자니까! 란 학부모가 100% 동의할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의 그 국어교사 표상섭(김송일 분)이 문제를 일으킨다. 출제문제의 이중정답을 인정치 않는다. 학생은 울고 학부모는 들볶아서 혜진이 나선다. 하지만 표상섭은 요지부동. “부끄럽지도 않아요? 애들시켜 점수 앵벌이나 하고 등급을 교란하는 짓.”이란 타박만 듣고, 끝내는 “기생충 같은 것들”이란 욕도 얻어 먹는다.

하지만 혜진은 옳았고 재시험이 진행된다. 표상섭과의 재회자리서 표상섭은 말한다. “대단한 자극였어요. 애들은 학교보다 학원을 더 믿는다. 학교는 그저 내신을 따는 곳이고 선생은 학생부를 써주는 사람이다. 알고 있는 것과 경험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서 긴 싸움을 각오했다고 선전포고한다. “난 계약서를 쓰고 애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고도 덧붙인다.

“감히 공교육을..”운운하며 계약서 없이 애들 가르친다는 자부심에 충만한 표상섭은 스스로 ‘알량하다’고 표현한 자존심을 위해 학생을 볼모로 잡고, 계약서를 쓰고 가르치는 바람에 ‘기생충’ 소리도 듣는 학원강사는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무리수를 감행한다. 자, 이제 누가 스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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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판에 서혜진 인생의 명장면을 연출한 옛 제자 이준호(위하준 분)가 대치체이스학원 신입강사로 도전한다. 내신 8등급에 서혜진을 만나 내신 1등급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고 누구나 부러워할 직장에 취업한 이준호는 서혜진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 ‘어머니가 낳고 서혜진이 기른 기적의 꼴통’ 소리를 듣는 그 자랑스런 제자는 객관적인 탄탄대로에서 벗어나 자신이 결코 권하고 싶지 않은 학원강사로 뛰어들려 한다. “막고 싶다”는 생각에 강사 등용에 딴죽을 걸어보지만 “근데 왜 스승처럼 굴려고 하지?”란 원장 김형탁(김종태 분)의 한마디에 제동이 걸린다.

자신도 김채윤한테 말했었다. “스승이라도 될 생각은 아니죠?” 그 말을 김형탁이 자신에게 한다. “왜 스승처럼 굴려고 하지?” 그러게. 난 스승이 아닌데. 게다가 자신은 업무 만족도를 물어오던 이준호에게 “환상!”이라 답했었다. “너네 팀장보다 내 연봉이 셀 걸”이라고도 부연했다.

이준호는 학원가 투신 이유를 밝혔었다. 대치동 집 한 채에 평생 운을 다 써버린 아버지의 재력은 제 것이 아니다. 그건 두 노인네의 노후자금이라 건들 수 없다. 자수성가 하려면, 대치동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동기가 똑같은데 자신에겐 환상적인 직장이라 자부해놓고 너는 하지 말아라? 결국 서혜진은 비토를 철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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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혜진은 왜 이준호를 만류하고 싶었을까? “앞으로 별로 즐겁지 않을 거야. 동료의 협동심, 의리 그런 거 아무 것도 없어. 강단 위에 서는 3시간, 주말에 12시간, 그거 아무 것도 아냐. 그 뒤의 시간이 훨씬 더 힘들 거야. 니 성장은 니가 알아서 해야 돼. 강사들 모두 니 경쟁상대야. 학생 수는 정해져 있고 이건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는 판이야. 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너를 공격하거나 이용할 거야. 애들 하나 들고 나는데 울고 웃게 될 거야. 애들은 성적이 올라도 그만두고 떨어져도 그만 둘 거야. 오르면 지가 잘해서, 떨어지면 강사가 못해서. 그만둘 때 얌전히 그만두면 고마운 거야. 악의적인 소문을 내거나 친구들까지 몰고 나가서 반 자체를 빠개버리는 경우도 많아. 그거 재건하는 거? 얼마나 걸릴지 몰라. 그 동안 니 수입은 바닥야. 최악의 경우 잘릴 수도 있고..”

그랬다. 준호에게 환상이라 했지만 서혜진이 대치동에서 보낸 14년은 그런 전쟁터였다. 대치체이스 대표강사 서혜진은 학생, 학부모, 동료 강사들에 부대끼며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해온 결과일 뿐이었다. 그리고 제 핸드폰에 ‘나의 자랑’이라 저장된 이준호가 그렇게 소모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 스승이 아님을 자각하면서도 스승의 마음을 품어버린 꼴이었다.

이런 서혜진이란 존재의 아이러니를 위한 설정인지 2회까지 등장한 서혜진의 학원 외 주변 인물은 주점 ‘야간비행’의 친구 내외 뿐이다. 시놉에도 가족이 세팅되지 않았다. 학원을 벗어난 일상도 거의 없다. 1타강사로서 학원의 인기인 서혜진은 정작 고립된 인간의 분위기를 뿜어낸다.

물론 이준호의 등장으로 상황반전은 당연히 예고돼 있다. 김형탁 왈 ‘고인 물에 풀어놓은 메기’처럼 서혜진이 길러낸 꼴통은 대치체이스 학원뿐 아니라 14년간 고여버린 서혜진의 심중조차 헤집어 놓을 모양이다.

‘주인공입네’하는 에고가 보이지 않는 정려원의 생활연기가 다음 주도 기대케하는 ‘졸업’이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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