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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기자의 시각] '운동권' 검사의 어떤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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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류 정 사회부 기자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의 여진이 수사 결과 발표 후 나흘이 지났는데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을 두고, 여야가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운동권 출신 검사' 논란이다.

논쟁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공소장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검찰의 공소장인지 걱정됐는데 의문이 풀렸다"며 "주임 검사인 진모 검사가 서울 법대 92학번으로 지난 96년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PD(민중·민주) 계열 운동권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진 검사의 이름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는 단체인 사회진보연대에 2007년 후원금을 낸 명단에도 등장한다며, 황교안 법무장관에게 동일 인물인지 확인을 요청했다.

법무부는 확인 결과 진 검사가 후원한 것이 맞는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법무부는 또 진 검사가 당시 매달 정기 후원금 5만원을 내는 회원이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진 검사가 후원금을 낸 2007년 9월은 그가 청주지검 영동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때였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기치로 1998년 출범한 사회진보연대의 홈페이지에는 국보법 철폐와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는 논평이 실려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고 공안 검사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이번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맡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검사로 임관한 뒤까지 정치성 짙은 단체에 꼬박꼬박 후원금을 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이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나 후원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하려는 것이다. 검찰청법은 검사가 정치 운동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꼭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검사가 정치적 편향성이 짙은 단체와 관련을 맺는 것은 언제든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번 수사는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만한 사건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의 종북 대응 지시가 "국가 안보를 위한 순수한 활동이었느냐" "종북 대응을 명분으로 한 선거 개입이었느냐"를 판단하는 수사였던 만큼, 애초에 공정성이나 편향성 시비를 철저히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후반부터 일각의 '언론 플레이'로 검찰 내부 갈등을 노출하면서 논란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해왔다. 이번 '운동권 출신 검사' 문제는 수사팀을 꾸릴 때부터 논란의 씨앗을 뿌려 놓은 셈이 됐다.

검찰은 "진 검사의 정치적 단체 후원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팀 구성 당시부터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더욱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아무리 공정하게 수사를 한다고 해도 어느 한쪽에선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한 원로 법조인의 말이 떠올랐다. "'실체적 진실'로 정의를 세우고 싶다면, '보이는 정의'도 바로 세워야 한다."

[류 정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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